제목 | 부활 제3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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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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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07 | 조회수90 | 추천수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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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부활 성야 미사 중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6개월 동안 교리를 배우고, 찰고를 마친 형제, 자매님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그 순간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30년 동안 아내가 기도해 주었어요. 이제 아내와 함께 성당에 나올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다른 형제님은 교회에 다녔는데, 교회에서는 ‘묵주기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묵주기도를 배워서 매일 바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외국에서 군 복무를 오래 했던 형제님은 전역 후 아내와 함께 가톨릭 신앙 안에 머물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민 온 지 1년 된 자매님은 외롭고 힘들었는데 성당에서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교리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분들 모두의 얼굴에 공통으로 떠오른 표정은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바로 복음이 주는 기쁨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내시도 말씀을 이해하려 애쓰던 중, 필립보를 통해 복음을 듣고, 에티오피아 내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시오, 물이 있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침이 있겠습니까?” 세례를 받은 후 그는 기뻐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 복음을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은 그 삶이 변화하고, 기쁨의 사람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웁니다.” 교황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 곧 선교가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기쁨의 넘침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는 바로 그 기쁨의 출발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삶은 단지 주일 미사에 나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안의 기쁨이 밖으로 흐르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남’은 정체성의 혁신을 뜻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삶은 의미를 찾을 때 비로소 살아있다”라고 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죄책감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사랑의 감동’을 통해 새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복음 안에서의 ‘기쁨’은 세상의 쾌락과는 다릅니다. 이 기쁨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있기에 교황님은 말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기쁨의 전달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기쁨을 자기 안에서 간직할 수 없습니다. 전하고 싶고, 나누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기쁨의 전달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교리적인 선언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이민 와서 외롭고 낯설었던 자매님이 성당 공동체를 통해 따뜻함을 느끼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라고 하던 모습에서 그 기쁨을 보았습니다. 묵주기도를 배우겠다고 하신 분은 기도의 기쁨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을 기다린 아내의 기도 속에서, 기쁨은 인내를 타고 오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세례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우리도 에티오피아 내시처럼 “기뻐하며”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 길은 기쁨을 나누는 선교의 길이고, 묵주기도로 하느님과 깊이 연결되는 내면의 길이며, 사랑으로 가득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길입니다. 세례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복음의 기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씨앗이 됩니다. 부활의 기쁨이 우리의 삶 안에서 충만해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의 세례자들을 통해 우리 자신도 새롭게 태어났던 그때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질문해 봅니다. “나는 지금도 그 기쁨 안에 살고 있는가? 나는 내 기쁨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는가?” 에티오피아 내시처럼, 우리도 다시 복음의 기쁨으로, 기뻐하며 길을 떠나면 좋겠습니다. 그 길은 사랑의 길이고, 믿음의 여정이며, 하느님과 함께 걷는 부활의 길입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그리스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네. 살아 있는 우리가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셨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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