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요한 6:44) 콘클라베가 시작되었고, 오늘 새벽 첫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세상은 또다시 한 사람의 이름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단순한 투표나 정치적 결정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선택하신 이가 누구인지 분별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콘클라베는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의 과정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 한 외딴길로 나선 필리포스를 만납니다. 그는 주님의 천사의 이끄심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외딴길에서,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납니다. 그 내시는 말씀을 읽고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 고백은, 오늘 우리가 하느님 앞에 드리는 기도처럼 들립니다. 필리포스는 이사야서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말씀은 내시의 마음을 열고, 그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그는 기쁨 속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길로 나아갑니다. 이 장면은 지금 로마에서 열리고 있는 콘클라베의 풍경과도 닮아 있습니다. 새로운 교황님을 선출하는 이 시기, 하느님은 또 한 사람을 말씀과 기도로 불러내십니다. 그 순간은 한 사람에게 있어 순명의 순간이며, 전 세계 교회에 있어서는 성령의 새로운 숨결이 스며드는 순간입니다. 새 교황은 종종 예상 밖의 인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말씀 안에서 자신이 왜 부름받았는지를 깨닫고, 온 세상을 향한 복음의 사명을 맡게 됩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필리포스는 세례를 베푼 뒤, 모든 고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교황 역시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보편 교회의 아버지(Papa Universale)’입니다. 내시는 에티오피아 출신 이방인이며, 궁중의 고관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에게도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교회가 인종과 국경,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품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이 말씀처럼, 이번 콘클라베를 통해 선출될 교황 역시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교회의 미래를 이끌 사람에게 지혜와 용기,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시길.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와 함께 복음의 길, 생명의 길, 기쁨의 길을 걷게 되기를.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