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직무 수행의 일차 목표는 ‘나 자신’의 구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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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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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14 | 조회수54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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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9-17).”
1) 마티아를 사도로 뽑기 전에, 베드로 사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이 말은, 두 가지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1)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예수님의 승천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지낸 사람들 가운데에서 사도를 뽑아야 한다. (2)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사도를 뽑아야 한다.
2) ‘예수님과 함께 지내다.’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입니다. 사도 후보자를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언급한 것은, 단순히 시간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개’를 암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회개하는 삶을(믿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사도를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말은,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은, 사도들이 수행하는 직무들 가운데에서 첫 번째 직무입니다. <‘부활’은 복음 선포에서 첫 번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 사도가 말한 ‘부활의 증인’은,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증언하는 증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고 증언하는 증인입니다. 그렇다면 ‘두 후보자 요셉과 마티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1코린 15,3-6).” 여기서 ‘열두 사도’는 ‘사도단’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마티아’가 사도로 뽑힌 때는 ‘승천 후, 성령강림 전’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는 열한 명입니다. ‘두 후보자 요셉과 마티아’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3) 배반자 유다는, 베드로 사도가 말한 ‘사도의 조건’에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자살했기 때문에(마태 27,3-5), 승천 때까지 함께 지내지 못했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도 직무를 제대로 맡을 기회 자체가 유다에게는 없었고, 그래서 그는 정식 사도였던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 다른 사도들과 함께 뽑혔고(마태 10,4), 또 사도들에게 주신 권한과 능력을 함께 받았고(마태 10,1),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함께 파견되어서 선교활동을 했지만(마태 10,5), 베드로 사도의 말을 기준으로 하면, 그것은 정식 사도가 되기 전의 수련기 때 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티아는 유다의 후임자가 아닙니다.>
4) 예수님 말씀에서,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라는 말씀은, ‘부름’과 ‘뽑음’이라는 은총이 먼저 있고, 그 은총에 ‘응답’함으로써 직무를 맡게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과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과 “너희가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모두, 예수님께서 ‘나를’ 뽑아서 ‘나에게’ 어떤 직무를 맡기시는 것은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들을 주님께 생색낼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사도 직무뿐만 아니라 모든 직무에도 해당되고, 넓은 뜻으로는 모든 신앙인의 신앙생활에도 해당됩니다. 어떤 직책을 맡았든지 안 맡았든지 간에,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의 첫 번째 목표는 항상 ‘나 자신’의 구원이고, 그 다음에 ‘모든 사람’의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성 마티아 사도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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