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귀가(歸家)의 여정 “아버지께 가는 길이신 예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5-16 조회수4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5.5.16.부활 제4주간 금요일                                                                  

 

사도13,26-33 요한14,1-6

 

 

귀가(歸家)의 여정

“아버지께 가는 길이신 예수님”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시편51,12)

 

오늘 옛 현자의 말씀이 경각심을 줍니다.

“어떤 사람에게 내일은 젊음이자 기대이지만, 누군가에게 내일은 늙음이자 두려움이다.”<다산>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열정에 있습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자에게 내일은 젊음이자 마음 설레는 기대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 흘러 나이들어도 마음 설레는 젊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를 소원합니다.

 

“뒤에 태어난 이들을 존중하라(후생가외;後生可畏). 어찌 그들이 지금 우리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젊음이에 대한 존중 또한 겸손의 표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에게 선사되는 겸손과 온유의 선물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중 마음에 담고 삼아야 할 말마디들입니다. 지난 4월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시 <속보>에 떴던 반갑고 고맙던 말마디의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속보, 교황청 국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35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발표하였다.’

 

짧은 언급이지만 참 강렬한 느낌입니다.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 라는 말마디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믿는 이들의 경우는 죽었을 때 분명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무(無)에로의 환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입니다.

 

요즘 수도원 게시판에나 신문 부고란을 유심히 봅니다.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90전후에 돌아가십니다. 새삼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10-15년쯤 남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귀가의 여정,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할 날도 가까워진다는 생각과 더불어 베네딕도 성인의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도 떠오릅니다.

 

‘귀가의 여정’중, 여러분은 과연 어느 시점(時點)에 와 있는지요?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로 내 인생 압축해봤을 때 오전, 오후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겠는지요? 일년사계(一年四季), 봄-여름-가을-겨울로 압축해 봤을 때 과연 내 인생은 어느 시점에 와 있겠는지요? 자주 묵상하는, 피정자들과 나누는 주제입니다. 

 

이런 묵상이 하루하루 날마다 깨어 오늘 지금 여기 제자리, 꽃자리에서 환상이나 허영, 거품이나 탐욕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진실하고 투명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으며 이래야 남은 인생 휴가를, 아버지의 집에로의 귀가 여정을 보람있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인생휴가, 인생소풍 끝내고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는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에서처럼 다음과 같이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하겠는지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아주 오래전 푸른하늘 두둥실 떠다니는 흰구름을 보며 쓴 '흰구름'이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하늘 본향 아버지의 집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 영혼의 원초적 본능입니다.

 

“하늘 보면

 마음은

 훨훨 날아

 흰구름 된다”<2008.5. >

 

오늘 복음의 서두 예수님 말씀이 이런 묵상이 옳았음을 밝혀 줍니다. 우리 마음에 안정과 평화, 위로와 치유를 주는 복음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입니다. 귀가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이요, 언제 예수님이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갈 길은 분명합니다. 탈선하거나 미아가 되어 방황없이 아버지의 집에 가는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면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우리의 생명이자 진리이신 아버지께 이르는 생명의 길, 진리의 길, 구원의 길, 하느님을 닮아가는 ‘하닮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이라는 길뿐입니다. 생명과 빛이신 예수님 길을 벗어날 때 아까운 인생 탕진하면서 무지와 허무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미아가 되어 살 수 있고, 생명이 아닌 죽음의 세상을, 진리가 아닌 거짓의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천국같은 이 세상에서 탐욕에 눈멀어 연옥이나 지옥같은 삶을 사는 어리석은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이래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귀가의 여정은 아버지의 집에 가는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이니 예닮의 여정이 됩니다. 바로 그 좋은 모범이 복음선포의 삶이 일상화된, 제1독서 사도행전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었습니다...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약속하신 대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시편 제2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낳았노라.’”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누며 존재론적 복음선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으며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너는 내 아들(딸), 내가 오늘 낳았노라.”(시편2,7ㄷ)는 말씀대로, 날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 부활의 삶을, 영원한 청춘의 삶을, 기쁨과 감사중에 귀가여정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구원, 그 기쁨을 내게 돌려 주시고,

 정성된 마음을 도로 굳혀 주소서."(시편51,14).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