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길’의 끝을 알고 있고 믿고 있으니, ‘인내’할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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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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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16 | 조회수23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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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1-6)”
1)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시고(요한 13,21), 또 베드로 사도가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예고하시자(요한 13,38), 제자들의 마음은 크게 요동쳤을 것이고, 몹시 불안해졌을 것입니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더라도, 최고의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고(요한 11,53),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지명수배령을 내려 둔 상황이었기 때문에(요한 11,57), 제자들의 마음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이라는 것을 제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라는 말씀은,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제자들에게 믿음과 용기와 힘을 주기 위한 격려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일을 겪어도 흔들리지 말고 내적 평화를 잃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라는 말씀은, “모든 일은 전부 다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뒤의 16장에,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16,22). 주님께서 주신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것은, 주님보다 더 강한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라는 말씀도, 하느님(예수님)보다 더 강한 권능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이고, 이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힘이 없어서 무기력하게 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고 계시고, 또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모자라서 구원하시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쪽에서 구원받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은, “나의 죽음, 부활, 승천이 모두 이루어지면”입니다.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라는 말씀은, ‘재림’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약속하신 말씀으로 해석됩니다(마태 28,20).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다가온다고 해서 두려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 사업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또 예수님의 죽음은 부활의 전 단계이기도 합니다.>
2) ‘아버지의 집’에 가신다는 예수님 말씀은, 공관복음에 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에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예고 말씀 때문에 기가 꺾여 있는 제자들에게 믿음과 희망과 용기와 힘을 주시려고 당신의 본래 모습을, 즉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셨고,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마태 17,1-3).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은 수난과 죽음 뒤에 이어지는 부활과 승천을 알려 주신 시청각 교육이었고, 지금 요한복음의 말씀은, 그것을 말로 풀어서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3)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곳까지 가는 길이 어떤지도 알아야 한다.”입니다. <당신의 죽음 뒤에 부활과 승천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또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당신의 제자라면 걸어가게 될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라는 토마스 사도의 말은, 그 당시에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또 아직 부활 신앙이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고 믿게 된 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한다면, 누구든지 신앙의 완성 단계에 금방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체험을 통해서 신앙이 완성된 사람이 더러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체험이 없더라도 믿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20,29). 체험하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먼저 믿으면, 언젠가는 생생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4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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