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5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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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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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3:34 | 조회수40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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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리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집 축성하면 읽는 시편의 기도입니다. 지금 이렇게 좋은 집을 축성하는 것은 본인들의 수고와 땀도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이렇게 좋은 집도 허물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집을 축성 받을 때는 겸손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집을 축복 받았으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일이 잘 안 풀렸습니다.” 계획하고, 광고하고, 주변을 움직이고,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는데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져 모든 준비가 물거품이 되는 일. 저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작년 가을, 황창연 신부님의 강연을 부활 제2주일인 4월 26일로 계획했습니다.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고, 포스터를 만들고, 상점에 붙이고, 다른 본당에도 돌렸습니다. 기대가 컸고,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 4일 전, 갑작스럽게 신부님의 모친께서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연은 취소되었고, 준비는 중단되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저는 곧 시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리로다.” 이 말씀이 머리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왔습니다. 인간의 뜻과 계획이 아무리 완벽해도, 하느님의 뜻이 함께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동시에, 우리가 계획한 일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라는 진리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부활 시기는 생명의 회복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의 길은 단순히 “살아났다”라는 기쁨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활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너의 인생을 하느님과 함께 지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너의 계획과 수고는 하느님의 뜻과 얼마나 함께하고 있는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삶은 언어의 집이며, 그 안에 우리가 존재한다"라고 했고, 문학가들은 종종 인생을 ‘건축의 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좋은 삶이란 단지 튼튼한 기반 위에 올린 집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린 ‘은총의 집’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말씀은 우리 삶의 지향점을 다시금 알려 줍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줄기인 주님께 붙어 있을 때만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룬 것이 아무리 크고 웅장해 보여도, 주님의 뜻과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외견상 실패처럼 보이는 일도 하느님의 뜻 안에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고 ‘회개’하였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 사도는 이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면서 베드로 사도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베드로 사도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두 기둥인 바오로와 베드로 사도는 회개함으로써 복음의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행동’입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충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늘 ‘겸손’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겸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생기가 돋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사람은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고 해도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친교는 구체적인 우리의 행동과 사랑을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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