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자녀가 착해지거나 악해지게 만드는 것은 엄마의 '지금' 감정이다> 복음: 요한 15,9-11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화에 이어 기쁨도 주고 가신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고 평화롭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평화와 당신 기쁨을 주고 가시는 것입니다. 우선 왜 자녀인 우리들이 기쁘고 평화로워야 하는지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불안과 우울은 나뿐인 사람, 나쁜 놈, 곧 모기로 만들어 부모가 사는 세상에서 살 자격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안하고 산란하고 두려운 상태는 우리를 극도로 이기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타인의 필요를 돌아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데만 급급해집니다. 마치 여름 밤, 단 잠을 깨우며 제 배만 채우려는 모기처럼, 타인의 고통이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 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탐욕은 선하다’고 외치던 고든 게코의 공허한 외침이나, 영화 ‘조커’에서 사회로부터 외면 당한 한 인간이 내면의 평화를 잃고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 또는 역사 속 수많은 폭군들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타인에 대한 잔혹함으로 드러냈던 예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들은 물질과 권력을 탐했지만, 영혼은 더욱 피폐해져 갔습니다. 바이킹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감정이 왜 꼭 자녀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느냐?’인 것이고 왜 ‘기쁘거나 평화롭게 해 주지 않고 당신의 그러한 감정을 먼저 가지고 전해주어야만 하는가?’입니다. 영화 ‘마더’는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불안에 휩싸입니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분서주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항상 어둡고 초조합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불안과 초조함도 점점 커집니다. 도준이 그렇게 된 이유는, 다섯 살 때 엄마가 힘들어서 박카스에 농약을 타서 도준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려고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도준의 내면에는 '언제든지 엄마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도준이 어머니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행동이 어머니의 기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불안정성은 도준이 사회적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사건에 연루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경찰서 면회실에서의 장면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면회를 가는데, 유리벽 너머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두렵고 초조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아들 역시 점점 불안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의 초조함과 불안이 그대로 아들에게 전이되는 장면입니다. 자녀는 왜 어머니의 감정을 그대로 물려받아야만 할까요? 단순합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누군가의 보호와 도움 없이는 생존과 존재가 사라지는 운명을 가졌습니다. 엄마의 감정은 어디서 생길까요? 바로 자신을 보호해 줄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깁니다. 도준의 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으면 그 감정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이되고 자녀는 그 감정에 의해 착한 사람도 되고 나쁜 사람도 됩니다. 그래서 자녀는 엄마의 감정에 민감합니다. 엄마의 감정이 평화롭지 않으면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커』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남성 아서(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지만, 어머니는 늘 정서적으로 불안정했고, 아서에게 진정한 애정과 따뜻함을 주지 못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서가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픈 어머니는 침대 위에 누워있으면서도 아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특히 결정적인 장면은 아서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아서는 자신이 학대당한 입양아였고, 어머니는 자신을 진심으로 보호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합니다. 어머니의 정서적 불안과 절망이 결국 아서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그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품고 타인을 향한 폭력적인 인물로 변화하게 됩니다. 영화 인사이듯 아웃은 한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감정들(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까칠함)을 의인화한 이야기입니다. 라일리는 가족이 이사한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감정적으로 힘들어합니다. 영화의 중요한 장면은 가족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색한 분위기로 식사를 하는 순간입니다. 어머니가 라일리에게 하루를 묻자, 라일리는 짧고 무뚝뚝하게 대답합니다. 이때 어머니의 머릿속 감정들이 등장하는데, 어머니는 라일리의 태도에 상처받고 슬픔과 걱정의 감정이 지배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장면에서 라일리 역시 어머니의 표정과 목소리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즉, 엄마가 걱정스러워하고 슬퍼하자 라일리도 감정적으로 어두워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후반부에 가면 라일리와 어머니가 서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터놓으며 울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비로소 라일리는 엄마의 슬픔이 자신을 위한 사랑임을 깨닫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찾게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 처럼 이 평화를 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