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제자리 찾기, 삶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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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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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20 | 조회수79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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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20.연중 제11주간 금요일
2코린11,18.21ㄷ-30 마태6,19-23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제자리 찾기, 삶의 면역력 키우기, 보는 눈 지니기”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시편34,2)
새벽 비내려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니 고향 어머니 집에 온 듯 편안합니다. 빗소리, 흙내음, 풀내음 자체가 치유와 위로의 구원이 됩니다. 마음 들뜨지 말고 잠시 멈추어 관상의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AI가 극성을 떨어도 참 덧없다 생각됩니다.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할 것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삽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고도로 물질주의화한 자본주의 시대,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를 잃어, 길을 잃어, 제자리를, 제정신을 잃어 뿌리없이 표류와 방황이요 무수한 병에 정신질환들입니다. 아주 예전 써놨던 자작시, 작은 ‘민들레꽃’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민들레꽃 형제들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있다”<2000.4.24.>
위 시로 인해 그날은 크게 위로와 힘을 받았고 한달은 내내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요즘은 챗gpt, 인공지능(AI)의 혁명시대라하여 난리입니다. 한국은 챗gpt 유료 구독자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 합니다. 어제 일간지에서 중국출신 세계적 인류학자(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소장 샹바오)의 인터뷰 내용이 참 유익했습니다. 길다 싶지만 부분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인용합니다.
“초가속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부분적으로 방향감각 상실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안정적으로 붙잡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지면에 발을 단단히 디디는 감각도 없다고 느낀다.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들고, 무엇이 닥칠지 모르겠고, 방향을 잃은 느낌이 드는 거다. 이럴 때는 매순간이 매우 빠르게 느껴진다. 이어 혼란, 심지어는 두려움이 생긴다. 왜냐하면 기준점, 닻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제자리의 정주의 삶에, 그리스도를 삶의 기준점으로 삼고 그리스도께 삶의 닻을 내려야 합니다. 현자의 조언은 계속됩니다.
“변화가 빠르게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고, 지적으로 대응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통을 들여다보고 우리 자신의 기반을 만들고, 우리의 강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은 바이러스를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아시아 의학은 ‘바이러스가 아닌 자신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면역체계를 키우고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개인차원에서도 땅에 발을 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구체적 만남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삶의 면역력도 키워야 한다.
사람들이 삶을 상상하는 방식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 역설적이다. 정치적으로는 분열, 양극화돼 있지만 SNS 때문에 모두가 똑같은 관점을 공유한다. 그 관점은 추상적이고 공중에 떠있어 누군가에게 쉽게 지배되고 조작될 수 있다.
AI가 촉발한 현대사회 양상은 한단어로 정의한다면 ‘상실’이다. 숲에서 길을 잃은 듯한 그런 상실감, 많은 사람이 지금 방향을 잃었다고 느낀다. 길을 잃었기 때문에 AI가 더욱 큰 존재처럼 느낀다. 지금이야 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참으로 참된 구도자들이요 수행자들이라면 늘 길을 찾아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답은, 길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 가까이 있습니다. 두 현자의 조언도 분투의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일을 하듯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듯 일을 하라. 이것이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가 되는 길이다.”<다산> “장인은 작업장에 있음으로써 자신의 일을 이루고, 군자는 배움으로써 도를 이룬다.”<논어>
그러니 각자 삶의 제자리에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가 되어 삶의 중심이자 희망인 그리스도를 따라 제정신으로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앞서 인터뷰에서 말한 모두에 대한 답을 참 고맙게도 오늘 복음이 줍니다.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입니다. 날마다 영적혁명의 참된 회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삶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으로의 전환, 소유의 삶에서 존재의 삶으로의 전환, 행함(doing)의 삶에서 되어감(becoming)의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참 기쁨과 행복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흔히 무엇을 하기 위해서(to do)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to be) 수도원에 왔다고 합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으며 집착과 탐욕의 삶을 살기에 마음은 늘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등불입니다. 우리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우리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둡습니다. 마음이 맑고 밝아야 눈도 몸도 맑고 밝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날로 맑아지고 밝아지는 심안에 영안입니다.
영성생활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부익부빈익빈의 역설적 진리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 섬김의 삶에 충실할 때 날로 기뻐지고 행복해지는 내적 풍요의 삶이요, 땅에 보물을 쌓는 자기 중심의 삶을 살 때 온갖 야기되는 죄와 병에, 우울과 불행에 내적 빈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맑고 밝은 심안을, 영안을 지닌 이들은 참꿈, 참희망, 참비전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무욕의 삶일 때 하는 모든 일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 됩니다. 바로 그 빛나는 모범이 제1독서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그리스도의 하늘 비전을 생생히 볼수 있는 영안을 지녔기에, 또 평생 하늘에 보물을 쌓아 왔기에, 차고 넘치는 내공의 내적힘으로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 통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적 힘은 바로 그리스도의 힘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온갖 시련과 고난의 나열(2코린23-27)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삶자체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요 불가사의의 기적입니다. 바로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바오로 사도의 교회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염려를 통해 그가 평생 그리스도의 중심의 삶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하도록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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