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30 조회수39 추천수3 반대(0)

본당에는 주재원으로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한국 본사에서 미국 지사로 파견된 이들입니다. 한국의 본사에서 미국에 지사를 만들고, 지사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파견합니다. 이런 사람을 주재원이라고 합니다. 주재원 중에는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일부는 주재원을 끝마치고 미국에 남기도 합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좋기도 해서 남는 때도 있고, 대부분은 이미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남기도 합니다. 주재원은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가족은 미국에 계속 남는 일도 있습니다. 주재원이라는 직책을 내려놓고 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새로운 직장을 찾아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봅니다. 이분들에게 신앙은 큰 위로가 됩니다. 이분들은 신앙을 통해서 용기를 얻습니다. 하느님께서 하가르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지켜 주셨듯이, 그분들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한국 교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교구 설정 150주년과 103위 시성식을 준비하면서, 한국 교회는 박해받던 교회에서 선교의 교회로 나갔습니다. 사회의 억눌린 목소리를 품어주는 피난처가 되었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그 어둠 속의 등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넘쳐나는 사람 때문에 본당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1980년에 제가 다니던 본당도 2개로 나뉘었습니다. 새로 분가된 본당은 상가를 얻어서 시작했습니다. 같이 성당 다니던 친구들도 새롭게 분가된 본당으로 다녔습니다. 그렇게 분가된 본당이 지금은 6개가 넘습니다. 낙성대, 인현동, 신림성모, 성현동, 쑥고개, 행운동이 있습니다. 이 본당의 모 본당은 모두 중앙동(봉천동) 성당입니다. 하느님께서 하가르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지켜 주셨듯이 분가된 본당을 지켜 주셨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뿌리내리는 이들, 그 속에는 늘 눈물과 결단, 그리고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합니다. 마치 광야에서 물 한 병과 빵을 들고 나아간 하가르처럼, 우리도 빈손 같지만, 하느님을 신뢰하며 걷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다른 이야기, 예수님을 떠나보내는 고을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마귀 들렸던 자가 고침을 받았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눈앞에 기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익숙했던 삶의 질서를 잃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느님이 찾아오셔도, 내 삶의 틀이 흔들릴까 봐 오히려 그분을 떠나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릅니다. 익숙한 삶의 틀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주어지면, 그것이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치유와 생명을 가져오셨지만, 고을 사람들은 그 변화보다 지금의 질서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하가르는 다릅니다. 낯선 광야 속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라는 명령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광야에서 희망을 붙드는 용기, 변화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탁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하가르처럼 절박한 상황에 있는 분들도 있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워하고 밀어내는 고을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며, 우리가 지닌 작은 믿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우리 마을에서, 가정에서,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가르처럼 그분을 믿고, 자녀를 붙들고, 믿음을 붙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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