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공정을 물처럼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삶을 /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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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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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01 | 조회수33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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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유다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겼다. 이스라엘은 사막 문화권이다. 하절기에는 거의 비가 오지 않아, 더운 날씨 탓에 돼지고기는 여차하면 상했다. 의료 시설이 대단히 빈약했던 터라, 상한 고기를 먹고서는 괜한 고생도 수도 없이 했을 게다. 아마도 몹쓸 병에 걸려 더러는 죽기까지도 했으리라. 이러다보니 자연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여겨져, 율법에서 금하는 고기가 되었다.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기에(레위 11,7; 신명 14,8 참조). 우리도 예전에는 잘 먹어야 본전인 음식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이 둘이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과 마주하였다. 그 마귀 들린 이들은 매우 사나워 사람들이 그 길로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그곳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분께서 “가라.” 하시자, 마귀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이들이 고을로 가, 이 모든 일과 마귀 들였던 니들의 일을 알렸다. 그곳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님을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마귀 들린 이들이 주님께 다가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어,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 하십니까?”라며 소리를 질러 댄다. 그들은 어쩌면 하느님을 멀리하는 물질적, 명예욕이나 권력욕에 빠진 이들이다. 그들은 주님을 잘 알면서도 이미 현세의 죄에 빠져 멀리하려 든다. 이렇게 세상 죄가 그들에게 꽉 들어차 주님께 나아가려는 마음조차 못 먹는 이들이다. 악령의 마귀들이 지배하는 이들이었기에, 그러니 자연 그곳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다. 그렇지만 마귀들은 하느님께 대적할 수가 없었지만,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어 그분을 거부하도록 유혹한다. 하느님 능력 앞에 자신들의 존재감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기에. 이것이 마귀의 속성이다. 그래서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몰아낼까 봐 두려워하고, 결국 유다인들이 가장 부정하게 여기던 돼지 떼 속으로 기어 들어가 모두 물속에 빠져 죽어 버리고 만다. 예수님의 기운을 지닌 존재 자체가, 이미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예고하고 있는 거다. 사실 악의 세력은 예수님을 두려워한다. 나아가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마저 두려워할 게다. 그러기에 그분 표징까지도 피하려 들리라. 사실 현대는 ‘밝은 삶’을 원한다. 모두가 ‘환한 미래’에 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털어 내지 못한다. 행복 속에서도 어두운 미래를 연상하기에. 따라서 건강한 몸이면서도 질병의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변해야만 살게다. 하느님 구원을 얻으려면 악을 끊어 버려야하지만, 그러려면 포기해야 할 세상 것들이 너무 많을까 봐 실상은 두렵다. 어쩌면 그분을 그리워하면서도 계명 지키는 걸 주저하는 우리네 모습이다. 악을 이기는 선의 승리는 생색내기 예물 봉헌이나 위선이 아니라, 공정을 물처럼 흐르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거다. 우리가 악의 존재를 몰라 세상이 악한 게 아니라, 그 악을 알면서도 선을 사랑하는 데 주저하기에 악의 유혹이 사라지지 않고 더 커지는 것일 게다.
연중 제13주간 수요일(마태 8,28-34)
https://blog.naver.com/bigllightqa/22391849107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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