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참된 나눔의 출발점: 잃을 것이 없는 존재라는 확신> 복음: 마태오 10,7-15 
LORENZETTI, Pietro 작, (1325) |
찬미 예수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를 고쳐 주고 죽은 이를 일으켜 주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를 쫓아내어라.” 그리고 이 모든 놀라운 권능을 주시면서, 가장 중요한 행동 원리를 덧붙이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이자,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사도의 삶의 정수가 담긴 말씀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이 말씀은 단순히 ‘공짜로 받았으니 너도 공짜로 줘라.’라는 식의 거래 원칙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눔과 사랑의 가장 깊은 근원에 관한 통찰입니다. 참된 나눔, 진정한 자기 봉헌은 오직 ‘내가 먼저 충만히 받았다.’라는 깊은 감사와 마음의 평화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냉철한 이성에서 나오기보다, 따뜻한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이미 모든 것을 받아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충만함과 기쁨, 그 평화로운 감정이 우리를 진정으로 ‘주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이러한 마음의 평화와 감사 없이 무언가를 ‘주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거짓된 것이 될 수 있는지, 영화 ‘위플래쉬’는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 ‘앤드류’이고, 그를 가르치는 사람은 악명 높은 교수 ‘플레처’입니다.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최고의 기회를 ‘주고’ 그를 전설적인 연주자로 ‘만들어주겠다.’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베푸는 가장 큰 선물이자 나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플레처의 마음속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제자에 대한 사랑과 존중 대신, 제2의 전설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자신의 뒤틀린 집착과 광기만이 가득합니다. 그는 앤드류에게 칭찬 대신 모욕을, 격려 대신 폭언을, 가르침 대신 쇠 의자를 집어 던지는 폭력을 ‘줍니다’. 그의 모든 ‘주는’ 행위는 앤드류의 영혼과 재능을 자신의 만족을 위해 착취하는 이기적인 폭력일 뿐입니다. 그가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처이고, 가르침이 아니라 거짓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울 왕이 다윗에게 왕의 사위가 되는 명예와 군대의 지휘권을 ‘주는’ 척했지만, 그 마음에는 시기와 불안이 가득하여 실제로는 다윗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평화 없이 주는 것은 이처럼 주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빼앗는 행위일 뿐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먼저 ‘거저 받았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영화 ‘어바웃 타임’이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주인공 ‘팀’은 자기 가문의 남자들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 그는 이 엄청난 능력을 첫사랑을 얻고, 실수한 순간을 되돌리는 등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능력의 진짜 사용법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하루를 두 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온갖 긴장과 걱정 속에서 평범하게 하루를 살고, 두 번째는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면서 첫 번째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 주변 사람들의 미소,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입니다. 팀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놀라운 진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의 하루하루가 이미 선물이었고,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깨달음 이후,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되돌릴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실수해도 괜찮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이 있지만, 그저 현재를 충실히 받아들이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거저 받았기에’ 잃을 것이 없다는 믿음 안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급함 대신 여유를, 불안 대신 평화를, 인색함 대신 사랑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기쁘게 내어주는 사람이 되려면 주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를 채워주시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거저 받았는지를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기쁘게 주려면 다 가졌다는 감정을 느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그렇다면 다 가져서 잃을 것이 없다는 확신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갖는 것의 정점은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해 주는 모든 것들, 아까운 마음이 들까요? 어머니에겐 자녀가 전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보다 더 위대한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용서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으며,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되었다고 믿을 때에야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대가 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1코린 4,7) 성체성사를 통해 이 믿음을 가지면 비로소 이젠 내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