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 입에서 언제 힘 있는 말이 나오는가?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10 조회수4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5년 다해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우리 입에서 언제 힘 있는 말이 나오는가?> 

 

 

 

 복음: 마태오 10,16-23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찬미 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앞둔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할까,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마태 10,19-20)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신앙의 위대한 선조들이 남긴 마지막 말에서 우리는 그 답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마지막 증언에는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교회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원망이나 저주가 아닌 용서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사도 7,59-60)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 대신 평화가 가득합니다.

 

 

    뜨거운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는 고통에 찬 비명 대신 박해자를 향해 태연히 외쳤습니다. “자, 이쪽은 다 익었으니, 나를 뒤집어서 다른 쪽도 굽게 하시오!” 죽음을 조롱하는 듯한 이 거룩한 담대함 앞에 공포는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원수가 아니라, 하느님께 데려다줄 친근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소서, 나의 자매인 죽음이여.”

 

 

    이태석 신부님은 “Everything is good.”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음까지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말씀을 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마귀가 세속과 육신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런데 이 무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영혼, 즉 삼구가 죽어버린 영혼 안에는 텅 빈 공간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텅 빈 자리는 하느님의 영,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채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때 성령의 말씀이 나올 수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이 영적 원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알아두시오. 우리의 원수는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으니, 바로 세속(世俗)과 육신(肉身)과 마귀(魔鬼)입니다. 이 세 원수는 밤낮으로 우리의 마음을 유혹합니다. … 이 삼구와 싸워 이기지 못하면,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인들은 바로 이 전투의 대가들이었습니다. 그들 안에서 '나'라고 불리는 옛 인간이 죽었기에, 죽음은 더 이상 그들을 위협하는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자신에게서 비워졌을 때, 성령께서 그 안을 가득 채우시고 당신의 말씀을 그들의 입에 담아주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죽음이라는 무기를 역으로 사용하여 나의 자아와 삼구의 욕망을 이길 때, 우리의 한마디 한마디는 힘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성인이 바로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십니다.

비오 신부님은 마지막 순간뿐 아니라, 평생의 모든 순간이 삼구와의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그의 몸에 새겨진 오상(五傷)은 그리스도와 함께 매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의 표징이었고, 밤마다 악마와 싸운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는 세상의 편안함과 명예를 철저히 멀리했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았기에, 그의 평범한 한마디 한마디에는 엄청난 힘이 실렸습니다. 그가 고해소에서 죄인에게 건넨 짧은 권고, 불안에 떠는 이에게 던진 “기도하고, 희망하며,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단순한 말은 수많은 영혼을 뒤흔들고 하느님께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말이 힘이 있었던 이유는, 그 말 안에 비오 신부님 자신의 자아가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 정화된 영혼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힘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 삼구를 죽이는 '죽음'을 두려운 원수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나의 이기심이 고개를 들 때, 헛된 욕망이 나를 유혹할 때,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려 할 때,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자매인 죽음'을 초대하여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죽여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1코린 15,31)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죽을 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될 것입니다(갈라 2,20 참조).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입을 통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매일을 마지막 날로 삼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말은 가정을 살리고, 이웃을 위로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 '성령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