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7.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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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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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6:50 | 조회수72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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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시험 성적을 잘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사업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그렇다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마 열이면 열, 모두 이렇게 답변하실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말했었고 또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노력만으로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열심히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논리보다 하느님의 뜻이 중요했습니다. 이 뜻을 찾은 사람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힘든 일을 피해 가지 않으며,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느님 안에서만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논리로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했다고 반드시 행복할까요? 또 가진 것이 많아야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의 손길 없이 행복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적인 노력은 세상의 물질적 가치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는 운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오늘 복음도 어제에 이어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는 '장면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시지요. 그래서 “내가 너희를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양처럼 보낸다.” (마태 10,16)라고 말씀하시면서, 회당에서 채찍질 당하고,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이라고, 또 가족 간의 충돌이 일어날 수 있고 (마태 10,19 참조),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태 10,22 참조) 어떻습니까? 세상의 논리로 따졌을 때,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끔찍한 삶이고, ‘왜 저렇게 살아야 해?’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삶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세상 것 너머에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시간과 이 세상의 시간은 어떻게 될까요?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을 ‘영원한 생명의 삶’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이 세상 삶은 짧은 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1초의 행복을 구하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행복을 구하겠습니까? 세상 논리만을 좇는 사람은 모두 1초의 행복을 구하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사람이 아닐까요? 무엇을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일러 주실 것이고, 우리 안에서 아버지의 영이 말씀하신다고 하십니다 (마태 10,19-20 참조). 이것이 하느님의 손길에 굳게 믿고, 하느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면서 끝까지 견디는 이만이 구원을 받습니다(마태 10,22 참조). ♡오늘의 명언♡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사진설명: 성 베네딕토 아빠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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