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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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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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13 | 조회수171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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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핵 관련 주요 시설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지도 않은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2,000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뛰어넘은 공격이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란은 당연히 주권 국가로서 이스라엘에 반격했습니다. 그 결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와 유가 급등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고, 주식·환율 등 금융 시장 전반에 불안 요소로 작용 중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중단되었으며, IAEA를 통한 검사도 불투명해졌습니다. 유럽 각국은 제재 재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시설과 미사일 역량을 타격했지만, 이란이 지하 시설을 확장하며 핵 개발을 재가속할 가능성도 있어, 향후 긴장과 군비 경쟁이 예상됩니다. 한 나라의 생존이 걸린 사안이라고 해도,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선택은 과연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공격이 과연 정의로운가? 이는 단지 국제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우리 신앙인의 성찰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유사한 구조가 반복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집트에 살고 있던 히브리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과 요셉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파라오는 히브리인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불안을 느꼈습니다. “만약 전쟁이 나면, 저들이 적의 편에 설지도 몰라.” 이 단순한 불안, 의심이 잔혹한 억압으로 이어졌습니다. 강제 노역, 신생아 살해,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국가 폭력입니다. 파라오의 두려움은 신중함이 아니라, 불의였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던진 폭탄 역시, 어쩌면 이와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이란의 핵 개발은 전 세계가 우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상대를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선제 타격을 가하는 선택이 언제나 정의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낳는 결과는 죄 없는 민간인의 죽음과 보복의 악순환, 그리고 불신의 심화뿐입니다. 이스라엘은 과거 바빌론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유배의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그 고통의 이유를 돌아보며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을 짓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새로 세웠습니다. 신앙의 본질이 힘이나 권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정의, 자비와 순종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려보낸 이는 다름 아닌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이스라엘과 충돌하고 있는 이란이 바로 고대 페르시아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레스를 하느님의 메시아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억압받는 백성을 자유롭게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역사의 반전은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됩니다. 때로는 실패와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더 명확히 보게 됩니다. 불의한 선택의 결과를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과거 억압받던 자신들의 역사를 잊은 것처럼 보입니다. 억압받던 자가 억압하는 자가 되고, 구원을 받던 자가 심판을 하는 자로 바뀌는 모습은, 신앙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복수나 불안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작은 이 하나에게 물 한 잔을 주는 행위조차 하늘의 상으로 이어진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파괴와 전쟁이 아니라, 이해와 용서가 하느님 나라를 이끄는 길입니다. 국제 정세와 정치가 혼란한 이때, 우리는 성서의 거울을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정의로운 길을 선택하는 지혜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파라오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길을 따르고 있는지를 성찰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평화의 길을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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