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주님의 제자답게 삽시다 “참평화, 주님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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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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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14 | 조회수51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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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14.연중15주간 월요일
탈출1,8-14.22 마태10,34-11,1
주님의 제자답게 삽시다 “참평화, 주님 사랑, 제 십자가, 환대”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리이다.”(시편17,15)
제1독서 창세기는 끝나고 오늘 연중 제15주간 부터는 탈출기의 시작입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의 활약으로 잠시 평화를 찾았던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련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느님은 언제나 배후에서 도와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파라오의 명령에 불복하여 산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살려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히브리 산파들을 잘 돌보아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번성하여 더욱 강해졌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의 집안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파라오 임금은 태어나는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주라 극단적 조치를 감행합니다. 흡사 하느님과 대결하는 악의 화신 같은 파라오같습니다.
흡사 믿는 이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을 상징하는 듯 시작된 탈출기에서 배우는 바, 우리 삶의 여정은 엑소도스, 끊임없는 탈출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주님은 우리의 하루하루 탈출의 여정을 도와 늘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늘 지녀야할 바 탈출기의 히브리 산파들과 같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오늘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 넷에 대해 나눕니다.
첫째,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평화의 주님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며, 그 결과 분열된 관계를 보여줍니다. 흡사 주님의 임재와 더불어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의 분리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창조적, 과정적 분열후에 도달하는 참평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베네딕도 규칙에도 “거짓 평화를 주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결코 값싼 평화는 없기 때문입니다. 분열된 상황에서도 지극한 인내의 믿음이 있어 참평화의 열매입니다. 그러니 평화가 아닌 분열, 불화의 현실에 결코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참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배웁니다.
둘째, “어버지나 어머니를,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사랑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길이자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사랑의 으뜸자리에 놓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진리의 연인’으로, 베네딕도 16세 교황처럼 ‘진리의 협력자’로 사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수록 이웃에 대한 순수한 아가페 사랑도 가능합니다. 맹목적 눈먼 이기적 사랑이 아니라 눈밝은 집착하지 않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깨끗한 이타적 사랑입니다.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도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덧 낫게 여기지 말라”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셋째,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역설의 진리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참삶의 구원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각자 고유의 십자가입니다. 아모르 파티, 운명애처럼 제 십자가를 사랑하여 끝가지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책임적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책임을 다함으로 입증되는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는 제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제 십자가를 지지 않고 사람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제 십자가를 사랑할 때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십사 기도하는 것입니다.
넷째,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참으로 인권존중의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요 형제 하나를 받아들임은 바로 예수님을 더 나아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배경이 되시는 예수님이요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환대의 사랑, 환대의 정신, 환대의 영성으로 살라는 말씀이며 특히 주님을 믿는 형제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환대의 정신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주변을 챙길줄 아는 사람이 백성을 다스릴 지혜도 얻는다.”<다산>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 온다.”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속담도 있듯이, 천리향, 만리향처럼 환대의 향기는 멀리 멀리 퍼진다는 것이며 저절로 수도원의 성소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이 강렬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가까이에서부터 섬세한 디테일에 강한 환대의 사랑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환대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제자됨을 요약하는 제 좌우명 고백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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