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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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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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15 | 조회수57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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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7/15) :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 제1독서 : 탈출 2, 1-15ㄴ * 복음 : 마태 11, 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가파르나움을 꾸짖으십니다. ‘왜 인가?’ 그 이유는 그들이 티로나 시돈처럼 바알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혹은 소돔처럼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또는 단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20)
그렇습니다. 단지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많은 기적을 보았는데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것은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영적 무지로 가려져 있는 어리석음과 굳어진 완고함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먼저 베풀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의 어리석음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돌아온 탕자이야기’에서, 특은을 받고도 받은 줄도 모르고 죄지은 줄도 모르기에 돌아오지도 않은 ‘큰아들’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 우리가 하느님과 공동체로부터 많은 사랑과 특은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영적무지로 어리석고 완고하고 고집스런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 이야기”(루카 12,41-48)의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바로 제가 당신의 뜻을 알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요, 많이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주저하고 망설이며, 이기심과 자애심과 편리와 안주에 사로잡혀 깊이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도시들을 경고하신 것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애타는 사랑의 호소였습니다. 멸망으로 빠져드는 그들에 대한 동정과 애도의 한탄이요 경고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애타는 호소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오늘도 주님께서 저희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은, 저희에게 그 사랑을 주신 까닭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제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저에게 그만큼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부를 건네주신 우리 주님께 우리도 전부를 건네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20) 주님! 당신의 꾸짖음이 사랑임을 알게 하소서.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밑에 모으듯 품으신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토록 많은 사랑을 요구하심은 그토록 많은 사랑을 주셨음입니다. 그토록 받고 또 받으면서도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비뚤어지고 변덕스런 제 마음을 바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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