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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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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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0:09 | 조회수17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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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마태 14,13-21).”
1) ‘빵의 기적’은, “예수님은 우리를 먹이시는 분”, 또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낸 기적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1코린 8,6).”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시는 분이고, 성자 예수님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력을 받아먹으면서 살고, 그 생명력의 힘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갑니다. <이 말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예수님 없이 잘 살기만 한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현세의 인생’만 놓고 보면, 믿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내세,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을 안 믿거나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죽음’을 향해서 가는 인생입니다. 그것은 결국 허무하게 끝나고 사라져버릴 ‘시한부 인생’일 뿐입니다. 반대로, 신앙인의 인생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는 인생입니다. 지금 이쪽 세상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여도, 저쪽 세상에 가면 ‘허무’와 ‘영원’으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인생’과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영원히 사는 인생’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2) 예수님은 바로 그 ‘영원’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일용할 양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 또 ‘말씀의 은총’과 ‘치유의 은총’을 통해서도 주십니다. 마태오복음에는 ‘빵의 기적’ 앞에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는 말만 있지만(14절), 마르코복음을 보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마르 6,34), 루카복음을 보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루카 9,11). 세 복음을 합해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우선 먼저 병자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주셨고, 그 다음에는 모여든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의 은총’을 주셨고, 그러고 나서 ‘빵의 기적’으로 ‘일용할 양식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 세 가지 은총은 모두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은총입니다.
3)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이 말씀에서 ‘길’을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길에서 쓰러지다.’는, 믿음도 있고, 희망도 있지만, 힘이 부족해서 중간에 쓰러지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격려할 때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데, 그 사람 ‘안에’ 남아 있는 힘이 하나도 없다면, 그런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안에’ 힘이 없다면, ‘밖에서’ 그 힘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격려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 힘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4) 16절의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말씀은, 기적의 결과를 먼저 생각하면, “내가 먹을 것을 마련할 테니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는 내가 마련한 것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로 해석됩니다. 제자들은(신앙인들은, 또는 교회는) 주님께서 주신 은총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임무를 받은 이들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신앙인들은 우선 먼저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잘 받으려는 노력부터 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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