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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께서 우리의 속을 보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10:03 조회수30 추천수2 반대(0) 신고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마태 23,27-32).”

1) 여기서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를

원문대로 직역하면, “너희 조상들이 남겨 놓은 것을

행함으로써 조상들의 죄를 완전히 채워라.”입니다.

즉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여서

유대인들의 죄를 가득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죄가 가득 차면 하느님의 심판과 처벌이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싶으면

조상들이 덜 채운 죄를 완전히 채워라.”인데, 말씀의

진짜 뜻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싶지 않으면

조상들이 했던 그런 짓은 하지 마라.”입니다.

2) 죄가 가득 차면 하느님의 심판과 처벌이 내린다는 믿음을

묵시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린양이 다섯째 봉인을 뜯으셨을 때, 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희고 긴

겉옷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묵시 6,9-11).”

혹시라도 “왜 굳이 죄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실까?”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베드로 사도의 다음 말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2베드 3,15).”

3) 예언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주님께서 너무

기다리시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데, 죄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회개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시는 것은 대단히 큰 은총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다림은 ‘무한정’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마태 24,50)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을 끝내고

심판을 시작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마태 24,36).

‘내일’일 수도 있고, ‘오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4) 무덤에 ‘회칠’을 하는 것은,

원래는 그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이

“무덤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회칠을 한 무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회칠을 해서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무덤은 무덤일 뿐이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보석함’으로 보이더라도

속에 쓰레기만 들어 있으면, 그것은 그냥 쓰레기통입니다.>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또는 다른 사람들을

죄짓게 만드는 자들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5) 29절-31절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꾸미면서

예언자들을 존경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있으니, 조상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는 예언자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6) 그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대부분

위선자들이었지만, 모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타나엘’은(‘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율법학자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라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요한 1,47).

<위선자가 아닌, ‘진실한 사람’이라는 칭찬입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열성적인 바리사이였습니다(필리 3,5).

따라서 어디에 속해 있느냐보다 각자 스스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선자들과 함께 살고 어울리면 위선에 물들기 쉽고,

죄인들과 함께 살면 죄에 휩쓸리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하나의 ‘겨자씨’와 ‘누룩’이 되어서

위선자들과 죄인들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남 탓’을 할 것도 없고, 환경 탓을 할 것도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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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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