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신앙생활은 모든 것을 버려서 모든 것을 얻는 생활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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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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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04 | 조회수45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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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1-11).”
1)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인 어부들과 예수님의 첫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 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1,40-42).”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안드레아 사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하나는 아마도 요한 사도였을 것입니다. 안드레아가 자기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간 것처럼, 요한도 자기 형 야고보를 예수님께 데려갔을 것입니다.> 루카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고기잡이 기적’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첫 만남’이 있고 나서 몇 달 뒤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바로 앞의 4장에는 “시몬의 병든 장모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루카 4,38-39). 베드로 사도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일을 직접 보았고(루카 4,31-37), 그날 저녁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것도 보았습니다(루카 4,40). 그렇기 때문에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라는 예수님 말씀에 곧바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2) 어부들이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은, 먹고사는 일만 신경 쓰면서 사는 인생은 허무하게 끝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 상황은, ‘말씀’ 안에서, 말씀대로 사는 인생은 결코 허무하게 끝나지 않고 은총으로 충만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고기잡이 기적’은 어부들만 체험하고, 이야기의 앞에 언급된 군중은 모르는 일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 기적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기 위한 기적, 또는 어부들만을 위한 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어부들만을 위해서 기적을 일으키셨을까? 그것은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한 기적이 아니라, 또는 당신의 신원을 계시하기 위한 표징이 아니라, 어부들을 사도로 부르기 위한 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세리 마태오를 부르실 때처럼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만으로 부르실 수도 있었겠지만(마태 9,9), 아마도 어부들의 경우에는, 어떤 극적인 변화가 필요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부들은 예수님께서 바라신 대로 새롭게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라는 말은, 그들이 자신들의 ‘옛 삶’을 버리고, 완전히 변화되어서 ‘새 삶’을 선택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인의 신앙생활은 “모든 것을 버려서 모든 것을 얻는” 생활이고,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생활입니다. 만일에 살던 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사실상 신앙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한 말이 아니라, 주님의 권능에 압도된 사람으로서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낸 말입니다. 아마도 베드로 사도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이지만, 저를 받아 주십시오.”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 사도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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