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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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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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04 | 조회수163 | 추천수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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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와서 ‘안마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리모컨이 안 되어서 바꾸었습니다. 이번에는 리모컨 전원은 들어오는 작동이 안 되었습니다. 서비스 센터에 연락했더니 수리 기사를 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1시에서 3시 사이에 온다고 해서 기다렸습니다. 3시가 넘어도 오지 않기에 기사에게 전화했습니다. 기사는 서비스 센터에 부품이 없어서 못 간다고 연락했다고 합니다. 서비스 센터에서 제게 연락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2시간 기다리면서 생각했습니다. 연락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짜증이 나기도 했고,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서 고칠 때까지는 월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는 편이라서 다른 일을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서비스 센터에서는 미안하다는 전화를 했고, 부품이 와서 수리가 될 때까지는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부품이 한국에서 온다고 하니, 오는 대로 수리해 주기로 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곤경 중에 하느님을 불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광야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겼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성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담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겼고, 선과 악을 아는 나무를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금 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다윗은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의 아내를 탐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라도 가겠다고 했던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역사의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복음을 선포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하느님의 의로움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 하느님 나라는 명예, 권력, 재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이 하느님 나라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새로운 권위를 지닌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입니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돌아온 아들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자비로운 아버지처럼 우리도 거룩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죄를 범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나의 가식과 위선을 돌아보라는 가르침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몸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가 지금 상처받고 있는 이의 이웃인가를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표징을 따라가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의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십자가를 지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복음이 되셨습니다.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다락방에서 나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교회도, 신앙도, 희망도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부활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소생입니다. 부활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높은 하늘을 날아오르듯이, 삶의 변화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변화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변화입니다. 의혹에서 믿음으로의 변화입니다. 욕망, 시기, 질투, 원망의 삶에서 헌신, 나눔, 용서, 사랑의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변화된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삶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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