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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05 조회수53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루카 5,33-39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꼰대’같은 모습을 나무라십니다. 자기들만 옳고 다른 이들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독단,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의로움과 거룩함을 함부로 판단하려 드는 교만이 문제였지요. 그런 모습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이는 아주 교활한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엄격주의에 입각한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사이들처럼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자주 단식한 것은 아니지만, 유다인으로써 율법에 따라 지켜야 할 단식일을 어기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식을 자주 하지 않는 것이 마치 큰 잘못인 것처럼 호도합니다. 또한 늘 시끄럽게 몰려다니며 죄인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먹고 마시기만 하는 무절제한 사람으로 몰아가지요. 실상 예수님의 제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군중들을 상대하느라, 매일 먼 길을 걸어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느라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을 시간 조차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제자들 편을 드시며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으십니다. 단식은 그저 ‘자주’ 한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지요. 언제, 왜 해야하는지를 알면서 그 뜻과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해야 진정한 단식인 겁니다. 우리가 단식을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신 것처럼, 하느님 이외의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세속적인 욕망을 모두 내려놓고 내 마음을 하느님과 그분 뜻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즉 단식은 하느님과 더 긴밀하게 일치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 점을 망각하고 단식이라는 ‘행위’ 자체에만 집착하다보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단식하는 ‘횟수’만 신경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숫자로 자기 의로움을 과시하며, 다른 이들을 심판하고 단죄하려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한 단식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과 그분 뜻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그래서 굳이 단식이라는 어렵고 간접적인 수단을 통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름으로써 얼마든지 하느님과 일치될 수 있는데, 왜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을 흐릿하게만 보는 구약의 틀에 갇혀있느냐는 것입니다. 계속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체가 무너지고 말지요. 그런 점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십계명을 어기지 않는 것에만, 죄를 짓지 않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말이지요. 그러니 이제 계명 자체에만 얽매여 주눅든 채 살지 말고, 사랑의 계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그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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