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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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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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07 | 조회수66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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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33).”
1) 여기서 식구들과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은, 실제로 미워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현세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가족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영적 동반자’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가정이 ‘성가정’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집착’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을 신앙생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먼저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신앙생활 때문에 사회생활을 뒤로 미루는 신앙인들도 분명히 많이 있지만, 신앙생활 때문에 사회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신앙심이 식어버린 사람들만 냉담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먼저 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냉담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사자들은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지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변명일 뿐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잊어버리고,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신자들의 삶을 모르니까 그런 말을 쉽게 한다.” 라고 반박하는 경우도 실제로 많습니다. 그러면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현세적인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을까?
2)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는 말씀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피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의 길’만 있는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길도 만나고, 편안하고 쉬운 길도 만납니다. 아프고 슬플 때도 있고, 기쁘고 행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힘들고 어려운 길은 피하고, 편안하고 쉬운 길만 가려고 한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수 없고, 그러면 구원의 길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3) 28절-30절의 ‘탑에 관한 말씀’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끝까지 전력을 다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또 “신앙생활을 중간에 포기하고 중단하는 것은, 처음부터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칠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애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마칠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입니다. <물론, 아주 좁은 뜻으로 해석해서,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도 있는데, 모든 사람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에, 또 ‘부르심’이 그런 것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시작하지 마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4) 31절-32절의 ‘전쟁에 관한 말씀’은, “살고 싶으면(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면), 하느님께 맞서지 말고 순종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아직 멀리 있을 때” 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면, “늦기 전에 회개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 맞서지 말고 순종하라는 가르침을, 야고보서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야고 4,13-16).”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는,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일 뿐이다.”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다른 임금이 전쟁을 하려고, 또는 정복을 하려고 오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비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정복’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회개시켜서 구원하려고 애쓰시는 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23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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