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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슬로우묵상] AI는 거울일 뿐 -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작성자서하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09 조회수73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루카 6,12

밤 새 의논하던 그 자리

예수님은 12명의 사도를 선택하시기 전, 산으로 올라가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의 핵심이 될 제자들을 부르시는 중대한 순간, 예수님은 홀로 아버지와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존재와 존재와의 만남의 자리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누신 밤새의 기도는 단순한 말의 교환이 아니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존재가 존재를 향해 열려 있는, 가장 근원적인 친교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보다 먼저,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라는 깊은 머묾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밤의 만남은 결국 새로운 공동체, 곧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존재와 존재가 깊이 맞닿을 때, 새로운 생명이 나오듯이,

예수님의 밤새 기도는 새로운 백성을 낳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만남은 단순한 개인적 위로가 아니라,

역사를 바꾸는 창조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밤새 나누신 기도는 존재가 존재와 마주하는 깊은 친교였고,

그 만남 속에서 제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되며,

결국 새로운 공동체가 태어나는 생명의 자리였습니다.

AI가 하느님 자리를 대체하는 시대

요즘 대세는 AI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이 걱정될 때, 혹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AI와 먼저 의논합니다.

사업 계획을 세울 때에도, 회의를 준비할 때에도, 심지어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AI의 대답이 곧 나의 답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왜일까요?

첫째, 빠른 답 때문입니다.

AI는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기도처럼 길고 긴 침묵을 견딜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편안한 위로 때문입니다.

AI는 우리를 꾸짖지 않습니다. 아픔이나 약점을 드러내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받아줍니다.

셋째, 통제의 환상 때문입니다.

AI의 답은 결국 우리가 입력한 데이터를 토대로 나옵니다. 결국 우리가 듣고 싶은 답을 되돌려주기 마련이지요.

이것은 내가 여전히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줍니다.

하느님과의 만남 vs. AI와의 만남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하느님과의 존재적 만남과 AI의 활용과는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숙고해 보았습니다.

만남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만남 인격과 인격,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만남입니다.

자유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이며, 상호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는 만남입니다.

“나는 너 안에, 너는 내 안에”(요한 17,21)라는 표현처럼 깊은 내적 일치로 이어집니다.

AI와의 만남 인간과 알고리즘, 존재와 비존자의 접촉입니다.

상호성이나 자유로운 응답이 아니라, 입력과 출력의 관계이고, 데이터에 의해 작동하므로, 나를 ‘알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 정보를 반영해 거울처럼 되돌려줄 뿐입니다.

만남의 결과는 어떠한가요.

하느님과 예수님의 만남 변화를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떠났고, 모세는 돌아갔고,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변화로 인해 존재가 더 깊은 사랑과 자유로 확장되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길, 새로운 역사가 태어납니다.

만남의 끝은 생명입니다.

AI와의 만남안심과 확신은 줄 수 있으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현재 상태를 정당화하거나 강화하는 경우가 많고, 더 많은 질문, 더 많은 의존으로 이어지지만 새로운 삶을 열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만남은 끝이 없는 순환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느님과 예수님의 만남은 “존재가 존재를 낳는 창조적 만남”입니다.

그 속에서 자유와 사랑, 그리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반면, AI와의 만남은 “존재가 거울을 만나는 반영적 만남”입니다.

그 속에서 편안함은 얻을 수 있지만, 근원적인 변화나 생명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존재와 존재의 만남은 나를 넘어서는 사랑과 자유의 사건이고, AI와의 만남은 나를 되비추는 편리한 거울에 가깝습니다.

도구와 주인을 구분하기

물론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AI가 하느님의 자리를 대체하려 할 때, 즉 인생의 근본적 질문과 존재적 고민의 상담자가 되려 할 때입니다.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정보 검색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것과, 내 존재의 방향과 의미를 AI에게 묻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나는 어떤 만남을 하고 있나요?

어떤 만남을 갖고 싶습니까?

오늘 나는 누구와 의논했습니까? 내 결정의 배경에는 누구의 목소리가 있습니까?

편안함을 주는 인공지능의 목소리입니까, 아니면 때로는 불편하지만 진실을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입니까?

나는 존재와 존재의 만남으로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존재와 존재의 만남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떻게 존재와 존재의 만남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첫째, 침묵의 시간을 마련해보세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즉각적인 답을 구하지 말고, 그저 하느님 앞에 나 자신을 내어놓고 기다려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둘째,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마세요.

AI는 절대 묻지 않을 질문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사랑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에서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셋째, 변화를 각오하세요.

진정한 기도는 내가 원하는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춰가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세요.

예수님이 밤새 기도하시며 아버지와 나누신 그 깊은 교감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그 만남을 위해, 다시 산으로 올라갈 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슬로우묵상, 거울, 서하의노래, ai, 하느님자리, 존재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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