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원수를 사랑하여라.”는 “원수를 좋아하여라.”가 아닙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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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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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11 | 조회수50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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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27-38).”
1) 신앙인의 ‘사랑 실천’은, ‘하느님 선(善)의 실현’과 ‘인간 구원의 실현’이 목적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일도, 하느님의 ‘선’을 실현하는 것과 ‘구원’이 실현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나의 구원’과 ‘원수 같은 사람의 구원’을 모두 포함합니다.> 하느님의 ‘선’을 실현하는 방법은 ‘선’ 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악’으로는 ‘선’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을 통해서는 결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선’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2)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원수를 좋아하여라.”가 아니고, “원수 같은 사람에게도 ‘선’을 실천하고, 함께 구원받기 위해서 노력하여라.”입니다. 따라서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라는 말씀은, 무턱대고 잘해 주기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선’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라는 뜻입니다. 죄와 악을 막고, 그래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막는 것도 잘해 주는 것에 포함됩니다. 죄와 악을 막으려면, 상황에 따라서, 꾸짖거나 타이르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의 실현’을 위해서, 또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꾸짖고 타이르는 것도 ‘사랑’입니다. 뒤의 17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카 17,3ㄴ).” 꾸짖는 것은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고, 용서하는 것은 ‘자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정의와 자비는 항상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일에 정의 없이 자비만 실천한다면, 그것은 악을 방조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반대로, 자비 없이 정의만 실천한다면, 그것은 하느님 행세를 하면서 남을 심판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37절에 있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 라는 계명을 어기는 죄가 되기도 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가 되기도 합니다. 28절의 ‘축복’과 ‘기도’는 회개와 구원을 위한 일입니다. 그리고 29절-30절의 말씀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켜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악을 악으로 갚는다면, ‘악’만 남게 됩니다.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면, 모두가 함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3) 32절-35절의 말씀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지금 ‘원수’ 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도 나의 ‘이웃’입니다.>
4)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실제로 실천하기가 무척 어려운 계명이다.” 라는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먼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기는커녕,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나에게 잘해 주고 있다면? 사랑 받고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 사랑 실천도 잘하는 법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나는 누군가의 원수가 된 적이 없다. 나는 아무에게도 미움 받을 짓을 한 적이 없다.” 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기의 기억 속에 없다고 해서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큰소리칠 수는 없습니다. <교만한 위선자들은, “나는 누군가의 원수가 된 적은 없고, 원수를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합니다.> 우리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생각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원수 같은 너도 사랑하신다. 그러니 너도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은 ‘보잘것없는 죄인일 뿐인 나’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이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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