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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반석 위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생집을 지읍시다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13 조회수8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5.9.13.토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349-407) 기념일

 

 

1티모1,15-17 루카6,43-49

 

 

반석 위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생집을 지읍시다

“부단히 말씀을 실행함이 답이다”

 

 

“찬양하라, 주님을 섬기는 자들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찬미하라, 주의 이름”(시편113,1-2)

 

요즘 순례자 친구가 보내준 아이슬란드의 초현실적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많이 나눴습니다. 복음을 나누듯,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전하듯 나눴습니다. 영적 체험을 상징한다 싶은 순례 여행중의 사진들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와 같은 외적 여행의 체험을 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며, 이런 귀한 체험을 간접적으로 나누지만 실제 체험하는 순례자에게는 깊은 내적변화를 이루는 영적 신비체험과도 같을 것입니다. 순례여정중 글귀와 더불어 또 12장의 사진들을 보내줬습니다.

 

“해안 절벽이 아름다운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분화구와 해식동굴, 교회와 바닷가 마을들을 보고 초원의 농가주택에서 별을 보며 하룻밤을 보냅니다.”

 

바로 이런 외적 순례 체험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내 정주의 삶의 꽃자리에서 부단한 내적 순례 여정에 오르는 것입니다. 결국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 날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는 내적 순례 여정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내 삶의 자리에서의 부단한 탈출의 여정, 떠남의 여정, 회개의 여정, 파스카의 여정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환경을 찾는 외적 순례 여정이듯, 날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정주의 제자리에서의 내적 순례 여정입니다. 이를 요약한 산과 강이란 자작시입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임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강”

 

밖으로는 언제나 같은 정주의 산이지만,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새롭게 흐르는 내적 순례 여정의 강같은 삶입니다. 이런 내적 순례 여정을 그대로 살았던 성인들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부단한 회개와 더불어 부단한 기도와 말씀 실행의 삶이요, 오늘 복음이 참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오늘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좋은 나무와 같은 선한 삶을 사는 것이요, 맨땅이 아닌 반석 위에 인생집을 짓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긴 산상설교와는 대조적으로 루카복음의 평지설교는 아주 짧지만 결론 부분의 두 비유는 같습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비유와 또 하나는 맨땅과 반석 위의 집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삶을 살아가는데 말씀의 실행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두 비유가 너무나 간명하고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비유입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또 나쁜 열매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가두어 들이지 못한다.”

 

과연 나는 좋은 나무입니까 혹은 나쁜 나무입니까? 나무와 달리 사람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단한 회개와 더불어, 부단한 기도와 말씀공부와 실행을 통해 서서히 좋은 열매를 내는 좋은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의 변모가, 변형이 가능합니다. 이어지는 복음 말씀이 더욱 이런 각오를 새로이 하게 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차고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은 고정불변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한 회개와 수행을 통한 마음의 정화가 무공해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밖은 저절로 깨끗해 집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아무리 치장해도 안의 불결함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아주 예전 60년전, “옷보다는 몸이, 몸보다다는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저를 각별히 아꼈던 중학교 시절 3년 담임교사였던, 지금은 벌써 타계했을 최종훈 영어선생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래로부터 화장실에서 배설하는 오물은 정화조로 가지만 공동체에서 입으로부터 배설한 오물같은 말들은 그대로 공동체 분위기를 오염시킵니다. 이어지는 반석 위의 집의 비유도 신선한 충격적 가르침과 깨우침이 됩니다. 역시 단숨에 읽혀지는 설명이 필요없는 자명한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회사든, 나라든 이런 반석 위에 인생집을 짓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몇 달 몇 년에 끝나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인생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날까지 말씀 실행을 통해 평생 계속 지어가야 할 인생집입니다.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기초가 부실한 맨땅위의 인생집입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흡사 날림으로 지은 조립식 인생집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삶의 기초가 허약하여 안으로부터 무너지면 아무도 도울 수 없습니다. 평생 살아 있는 그날까지 말씀 실행을 통해 반석 위의 인생집을 지어야 합니다. 과연 나는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 같은 좋은 사람인지, 반석 위에 인생집을 짓고 있는지 날마다 묻고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좋은 삶의 참 좋은 모범이 제1독서에서 제자 티모테오에게 편지를 보낸 바오로 사도요, 오늘 기념하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학자입니다.

 

“첫째 가는 죄인인 나에게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바오로를 이처럼 회개와 감사로 이끈 것은 주님께 대한 한결같은 열렬한 사랑과 더불어 부단한 말씀실행의 결과였음을 깨닫습니다. 성 아타나시오, 성 바실리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와 더불어 동방교회의 4대 교부인 오늘 기념하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삶도 감동 그 자체입니다. 동방교회에서 그의 비중은 서방 4대 교부중 한분인 성 아우구스티노와 같습니다. 참으로 선종하기 까지 순교적 삶으로 일관된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성인은 349년 지금의 튀르기예의 안티키아에서 출생했고 생애 초기에 불타는 열정에 과도한 금욕생활로 평생 위장병과 신장병을 안고 살았으며, 황금의 입, 금구라 불릴 정도로 설교로 유명했습니다. 정의의 실현, 개혁에 주저함이 없었기에 평생 고위층의 권력자들과 교회지도자들에게 미움과 박해를 받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소박한 민중들에게는 절대적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교회학자이자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성인의 전생애를 요약하는 마지막 유배지에서 임종장면은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바실리쿠스 순교자 경당에 도착하자 죽음을 예견한 요한은 하야 의복을 가져다 달라하여 입었던 옷을 조용히 벗고 신발만 빼고 모두 바꿔입습니다. 그런 다음 요한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성체를 모시고, 평소 사용하던 형태로 마지막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서 찬미를 받으소서.”

성인의 전생애를 요약하는 거룩한 임종어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마지막으로 “아멘”이라고 말하며 성호를 긋습니다.’

 

성 바오로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물론 모든 성인들이 부단한 기도와 회개, 말씀 실행을 통해 주님을 닮아 좋은 나무같은 좋은 삶에 좋은 열매를 내는 삶을 살았고, 주님 말씀의 반석 위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생집들을 지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같은 삶을 살게 하시고, 주님 반석 위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생집을 짓도록 좋은 도움을 줍니다. 성 요한 크소스토모 역시 임종어에서 보다시피 성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했음을 봅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1티모1,17).

 

“해뜨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시편113,3).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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