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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순종과 비움, 겸손을 배워가는 ‘배움의 여정’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15 조회수4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5.9.15.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히브5,7-9 요한19,25-27

 

 

 

순종과 비움, 겸손을 배워가는 ‘배움의 여정’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님”

 

 

“동정 성모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복음 환호송)

 

새벽 산책시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크고 둥글고 탐스러워 잘 익었다 싶어 배열매를 당기는 순간 똑 떨어졌습니다. 봄, 여름에는 아무리 당겨도 떨어지지 않던 배 열매가 익으니 똑 떨어진것입니다. 영성이 잘 익었을 때 이런 지체없는 자발적 사랑의 순종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순종이야말로 참된 영성의 표지입니다. 순종에도 때가 있음을 배웁니다. 이처럼 자연을 통해서도 좋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받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 중심부에 자리한 어제의 성 십자가 현양 축일과 오늘 9월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축일이 순교자 성월을 지내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줍니다. 기념일이지만 저는 축일로 부르고 싶습니다. 인생고해같은 현실 한복판 중심에 위치한 아드님과 성모 마리아 축일입니다.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즈카르야 노래 후렴과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 같았고 참 은혜로웠습니다.

 

“오 십자가의 승리, 십자가의 기묘한 표시요, 우리를 하늘 나라로 개선케 하소서.”

 

이 구절을 대하는 순간 강론에 한 마디를 추가했습니다. ‘성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천하무적, 백전백승의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성무일도시 찬미가 7번째 마지막 연도 오늘 복음을 연상케 하며 영적승리를 노래합니다.

 

“십자가 곁에 서신 성모님이여, 이세상 하직할때 우리영혼이,

 천국의 영원복락 얻게 하시고, 승리의 기쁨 함께 받게 하소서.”

 

성 십자가의 예수님과 고통의 성모 마리아께서 함께 하심으로 9월 순교자 성월은 물론 언제나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잠시 고통의 성모 마리아 신심에 관한 역사를 살펴봅니다.

 

‘슬픔의 성모에 대한 신심은 중세 시대에 번성했습니다. 14세기 이래 널리 알려진 성모님의 일곱까지 슬픔, 성모칠고입니다. 즉 1.시므온의 예언, 2.이집트로의 피신, 3.아기 예수님을 사흘 동안 잃어 버리심, 4.갈보리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심, 5.예수님의 십자가형과 죽음, 6.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 7.예수님이 무덤에 안치되심. 

 

우리는 마리아의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성모님이 얼마나 아드님의 구원역사에 가까이 계셨는지 깨닫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첫 번째이자 가장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고통의 성모를 기리는 축일은 1667년 처음으로 세르비테 수도회에 승인되었고, 교황 비오 7세는 이 축일을 로마 전례력에 포함시킴으로써 1814년 라틴교회 전체로 확대됩니다. 1908년 교황 비오 10세는 이 축일을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오늘 9월15일로 옮깁니다.’

 

성모님께 슬픔의 절정은 <십자가의 길>에서 오늘 복음 장면과 일치를 이루는 ‘12처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과 ‘13처의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으신 장면일 것입니다. 여기서 즉시 떠오르는 “피에타의 성모님”이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입니다. 오늘 십자가의 예수님 발치에 서있던 성모님께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십자가 아래 성모 마리아는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자기비움(self-emptying)’의 충격적 신비를 나눈다. 아마도 이것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깊은 믿음의 케노시스(kenosis;비움)일 것이다.”

 

십자가상의 아드님과 똑같이 자기비움의 절정을 체험하신 성모 마리아로부터 배우는 ‘비움의 영성’입니다. 비움과 관련되는 오늘 히브리서의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순수한 우리말 둘은 ‘섬기다’와 ‘배우다’입니다. 역시 값싼 은총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상에서 겪는 모든 크고 작은 모든 고난을 순종을, 비움을, 겸손을 배우는 계기로 삼음으로 영적성장과 성숙을, 영적 승리의 삶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삶은 배움의 여정, 비움의 여정, 순종의 여정, 겸손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드리는 충고는 상처의 아픔에 머물 것이 아니라 즉시 배움의 계기, 비움의 계기로 삼아 공부했다 생각하고 통과하라는 것이요, 바로 이런 개방성, 신축성,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삶의 지혜요 영적승리의 길이라 충고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은 믿는 우리들의 삶의 자리를, 신원을 알려 줍니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바로 거기가 우리 삶의 자리입니다. 

 

여기 애제자가 상징하는 바, 예수님을, 교회를 사랑하는 신자들인 우리들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교회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이런 애제자들이 교회의 심장처럼 자리잡고 있어 비로소 살아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활동가들만 가득하고 예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관상가 애제자들이 없는 교회는 얼마 못가 시들어 죽어 버릴 것입니다. 

 

주님은 성모 마리아께 우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 주님은 애제자들인 우리에게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매일 미사때 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우리 삶의 자리를, 마리아 성모님의 자녀들임을 확인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순종의 여정, 비움의 여정, 배움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날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주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비통의 어머니시여, 기뻐하소서.

 당신은 큰 고통을 겪으신 후 천상영광으로 구원되시고,

 온누리의 여왕으로서 당신 아드님 곁에 좌정하셨나이다."(즈카르야 노램 후렴).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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