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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먹을 때 함께 먹고 굶을 때 함께 굶는 것이 함께 하는 것.>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19 조회수32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1-3).”

1) 루카복음서 저자가 여자들의 이름을 복음서에 기록한

것은, 그 여자들도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해석됩니다.

마티아를 사도로 뽑기 전에 베드로 사도는

‘사도의 자격’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복음서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여자들은 예수님의 활동

초기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직접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직접 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활을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부활의 ‘첫 증인’으로,

또 부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첫 선포자’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선택하셨습니다.

2) 3절의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라는 말은, 표현만 보면, 재산이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후원한 것으로,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풍족한 생활을 했음을, 또는 적어도

궁핍한 생활을 하지는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 말입니다.

그러나 뒤의 9장을 보면,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루카 9,58).

이 말씀에 대해서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시중을

들었다는 말과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라는 말씀은

모순되지 않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마태 12,1), 또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걱정한 이야기(마르 8,16), 예수님께서

시장하셨다는 이야기(마르 11,12) 등을 생각하면,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시중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여전히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생활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 여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돕기 위해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겠지만,

그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전체 내용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 상황을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자들 덕분에 궁핍한 생활을 면한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궁핍한 생활에

동참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다.’, 또는 ‘함께 지내다.’는

‘똑같은 생활을 똑같이 하다.’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굶고 있을 때,

여자들도 함께 굶었을 것입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먹을 때 함께 먹고,

굶을 때 함께 굶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상류층, 또는 부유층 여자라고 해도,

남편의 동의 없이는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외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자들은 상류층도, 부유층도 아니었습니다.

‘요안나’도 마음대로 돈을 쓸 형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3)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한 일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2-8)”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남매는 부자였을까? 모릅니다.

아마도 부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예수님을 위해서 미리 돈을 모으고 있었거나,

그게 아니면, 가난한 이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마리아에게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유다는 ‘향유 값만’, 즉 ‘돈만’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마음과 정성을 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신심’이란, 그렇게 자기가 믿고 있는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재산’이라는 말과 ‘시중’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친 그 ‘신심’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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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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