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어떻게 하지? ~옳지, 이렇게 하자.”(루카 16,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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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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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21 | 조회수52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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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9/21) 연중 제25주일 * 제1독서 : 아모 8, 4-7 * 제2독서 : 1티모 2, 1-8 * 복음 : 루카 16, 1-13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재물”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재물은 우리에게 선물임과 동시에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재물을 관리해야 하는가?”를 넘어서, “재물의 원 주인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언자 아모스는 빈곤한 이들을 짓밟고 망하게 하는 이들, 곧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의 참상을 고발하는 한편, 그들을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신심 깊고 품위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일임을 말하면서,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약은 집사의 비유와 해설”입니다. 여기에서는 재물과 맺는 관계가 결국은 하느님 및 이웃들과의 관계를 결정짓고 있음을 말해 말해줍니다. 비유 속의 집사는 주인의 재물을 횡령했습니다. 곧 관리인으로서의 자신의 신원을 망각하고 관리를 맡기신 분의 뜻을 거역하였고, 맡겨진 재물을 자신의 뜻에 따라 써버리고 낭비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이 그를 “집사 일을 그만두게” 하자,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와 지금 있는 ‘자리’,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자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지? ~옳지, 이렇게 하자.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루카 16,3-4)하고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처합니다. 그는 비록 불의한 관리인었지만, 지혜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잔머리를 굴려 마지막 한 몫을 더 챙기려하지 않고, 오히려 나누었습니다. 쌓아놓은 재물을 나누며, 움켜쥐었던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횡령하고 착복했던 것을 아낌없이 퍼주었습니다. 주인처럼, 아버지처럼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그들의 집으로 맞아들이도록 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루카 12,42)라는 질문을 떠올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루카 16,12)
그러니, 이 비유는 결코 약삭빠른 청지기의 처신이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자녀들도 닥쳐올 일에 대해 민첩하게 대처하건만, 그렇지 못하고 있는 빛의 자녀들의 삶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실, ‘재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이신 한 분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곧 ‘물질’이나 ‘자기 자신’ 등의 피조물을 섬기거나 자기의 판단이나 의견이나 뜻을 섬기지 않고, 주인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일이요 모독하는 일이요 우상숭배가 됩니다. 사실, ‘섬김’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의 신원과 정체성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주님께 속하며, 주님을 섬기고 따를 것입니다. 물질에 지배당한 사람은 물질을, 자기 자신에 지배당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뜻과 생각을 주인처럼 섬기고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가 주님께 속해 있고,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나는 대체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인가? 물질이나 자기 자신의 생각과 뜻이라는 우상인가?
주님! 당신보다, 제 자신과 재물을 앞세우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당신보다, 당신의 선물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소유하는 존재이기에 앞서, 소유된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재물도 자신도 관리할 뿐, 결코 소유할 수 없음을 알게 하소서. 아멘.
“어떻게 하지? ~옳지, 이렇게 하자.”(루카 16,3-4)
주님! 제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 재물과 소유를 횡령했습니다. 제 자신을 마치 저의 것인 양 횡령했습니다. 입으로는 당신을 주님이라 고백하면서도 제 자신을 주인인 양 섬겼습니다. 진정, 당신이 맡기신 이 몸은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이 저의 주님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를 옭아매는 자애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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