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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자신의 신앙에 대한 강한 확신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21 조회수28 추천수2 반대(0) 신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23-26).”

1)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신앙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고,

신앙은 있는데 신앙생활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신앙은 없는 경우, 그 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믿는 사람’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신앙이 없으면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실제로 있을까?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성당에 다니고 미사참례를 하고

신앙인들과 어울리고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겉으로는 열성적인

신앙인으로 보이더라도 그것은 그냥 취미생활일 뿐입니다.

반대로, 신앙은 있는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로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못하는 것을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분명히 믿음이 있었더라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믿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믿음 없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옛날의 박해 때에는,

사탄은 신앙인들의 신앙을 직접 공격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신앙생활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믿어라. 그러나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가

사탄의 새로운 전술인 것 같습니다.

박해 때에는 배교자들은 있었어도 냉담자는 없었는데,

오늘날의 교회 모습에는 배교자는 거의 없고 냉담자는

많은 것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신앙생활은 사회생활, 또는 세속 생활과 동등한 위치에서

선택하게 되는 생활이 아니라, 다른 생활보다 먼저 해야

하는 생활이고, 세속의 다른 생활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앙인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도 사회생활이나 세속 생활을 먼저 하면서

신앙생활을 뒤로 미루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먹고 살려니까 어쩔 수가 없다고 항의합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세속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와

세속의 인간관계를 주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완전히 다릅니다.

신앙인은 신앙과 생활을 모두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입니다.

둘 중 하나를 버리면 다른 것도 잃게 됩니다.

2) 박해와 미움은 ‘밖에서’ 오지만, 그것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고 신앙생활이 흔들리는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 즉 ‘내가’ 하는 일입니다.

유혹은 ‘밖에서’ 오지만, 유혹을 물리치거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나 자신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잃는다.’ 라는 말은 옳은 표현이 아니고,

‘버린다.’가 옳은 표현입니다.

신앙을 잃거나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입니다.

남 탓을 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신념’의 문제입니다.

단순히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도 내 신앙을 버릴 수 없다.” 라는 의지와 신념,

신앙생활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

3) 예수님의 말씀에서 ‘누구든지’ 라는 말은,

단 한 명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내가 주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확신,

또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확신이 있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순교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육신의 목숨은 버릴 수 있다.”입니다.

글자 그대로 “죽어도 좋다.”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입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는,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는 사람은 그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만이 중요하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그것보다 중요하지 않다.”입니다.

허무한 것들을 영원한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은, “나를 믿지

않고 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든지”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는,

“그 사람은 심판 때에 멸망을 선고받을 것이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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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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