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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 중심의 ‘우정의 여정’ “회개와 겸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25 조회수6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9.25.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하까1,1-8 루카9,7-9

 

 

하느님 중심의 

‘우정의 여정’

“회개와 겸손, 찬미와 감사, 경청과 순종, 섬김과 배움”

 

 

“춤추며 주님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시편149,3)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가르침이 참 고맙습니다. 인생을 성찰하는데 참 좋은 거울이, 교과서가 됩니다. 산티아고 순례여정후 형제자매들에게 환기시키는 진리가 일일일생(一日一生), 일년사계(一年四季)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 늙게 되고 죽게 됩니다. 생노병사에서 벗어나 영원히 젊게 건강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일일일생, 내 삶을 하루로 압축할 때, 아침 6시에 기상과 동시 태어났다 생각하고 오후 6시 해가 지면서 죽는다 예상할 때 지금 내 삶의 시점은, 또 일년사계, 내 삶을 일년으로 압축할 때, ‘봄-여름-가을-겨울’중 지금 내 삶의 시점은 어디에 위치해 있겠느냐?‘ 는 물음입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선물같은 고마운 날이요, 이런 진지한 물음이 오늘 지금 여기서 허상이나 환상, 허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 수확의 계절에 하나 더하여 <감사의 계절>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인생 가을에 속한 경우라면 특히 유념하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삶은 늙어가는 <노화의 여정>임과 동시에 주님 안에서 주님을 닮아 익어가는 <성화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느님 중심의 우정의 여정이요, 더불어 형제들과의 우정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날로 사랑과 신뢰도 깊어지고 거룩해 지는 관계의 성화의 여정이자 우정의 여정인지 자주 자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분별의 지혜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바, 하느님을 으뜸 자리로 놓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새삼스런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어제부터 주품종인 신고배의 수확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양을 닮아 둥글둥글 크고 환하게 익은 황금빛 배들을 볼 때 최고의 농부이신 하느님의 은혜에 저절로 경탄하게 됩니다. 27년전 <원숙(圓熟)>이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가을 열매들은 태양의 자식들

 배, 사과, 복숭아, 호박,...

 태양을 닮아 둥글둥글 환하다

 사람도 사랑으로 익어 열매되면

 얼굴도, 마음도, 글도, 말도, 행동도, 하느님 닮아

 둥글둥글 환하다”<1998.9.25.>

 

새삼 둥근 태양 아래 ‘둥글둥글(圓;원)’ 황금빛 찬란하게 ‘익어가는(熟;숙)’ 배 열매를 보면서 원숙(圓熟)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을 순간 까맣게 잊었음을 깨닫습니다. 햇빛, 공기, 물, 흙 모두가 하느님의 공짜 무상의 선물입니다. 이들 하느님의 선물들은 하느님의 것이자 모두의 공동소유임을 깨닫습니다. 복된 가난을 노래한 <들꽃 같은 삶>이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살아 있음이 찬미와 감사요 

 기쁨이요 행복이다

 들꽃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

 물주지 않아도, 

 거름주지 않아도, 약치지 않아도

 가난한 땅에서들 

 무리 이루어 잘도 자란다

 작고 수수하나 한결같이 맑고 곱다

 탈속의 초연한 아름다움이다

 최소한의 자리, 양분, 소비의 가난이지만

 하늘 바람에 유유히 휘날리는 샛노란 별무리 고들빼기꽃들

 참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가난한 부자다

 들꽃 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2001.5.20.>

 

인류가 하느님께 진 무한한 사랑과 은혜의 빚이 참으로 큽니다. 이들 무상의 선물을 독점하지 말고 골고루 나누며 살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들을 아껴쓰며 햇빛도 공기도 물도 흙도 오염되지 않도록 깨끗이 돌봐야 함을 깨닫습니다. 무분별한 탐욕으로 인해 하느님 주신 천연의 선물을 낭비하고 무수한 쓰레기들로 자연을 오염시키는 죄가 참으로 큽니다. 하느님 중심의 우선순위를 새로이 하는 생태적 회개가 절실한 때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우정의 여정에 반드시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기본적 핵심 요소들이 있습니다. 

 

1.회개와 겸손입니다. 하느님 앞에 진정한 회개 없이는 겸손도 없습니다. 회개와 더불어 겸손이요, 지혜와 자비입니다. 

2.찬미와 감사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 은혜를 알게 되면 저절로 찬미와 감사가 뒤따르며, 함께 하는 이웃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3.경청과 순종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경청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순종이요 이웃에도 이런 자세가 됩니다.

4.섬김과 배움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평생 주님의 섬김과 배움의 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이웃에게도 이런 삶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우선순위에 둔 하느님 중심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하까이 예언자가 주님의 집을 우선 지어야 한다는 것도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데 있음을 봅니다. 삶의 중심이 하느님이듯 그 가시적 중심은 주님의 집인 성전입니다.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우선순위는 회개의 실천으로 하느님 중심의 회복을 위해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오늘 복음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의인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 전전긍긍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헤로데 영주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중심을 잃어 버렸을 때 사람이 얼마나 망가지고 약해지고 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하느님 중심을 잃어 무질서로 인해 안에서부터 무너지면, 부패하면 아무도 도울 수 없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을 닮아가야 온전한 참나의 실현입니다.

 

하느님은 삶의 목표, 방향, 중심, 의미이기에 이런 하느님을 잃어버리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먼 인생이 될 수 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우이독경의 벽같은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중세의 대 영성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에 공감합니다.

 

“코헬렛의 삶에 대한 전적 부정적 묘사는 ‘최고의 지혜(the highest wisdom)’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라는 궁극의 결론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the service of God)에 유일한 우선성을 두기 때문이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은 지혜의 원천이자 생명과 빛, 사랑의 하느님뿐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하닮의 여정, 우정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시편149,4).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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