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오늘날에도 헤로데처럼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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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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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25 | 조회수48 | 추천수2 |
반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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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루카 9,7-9).”
1) 여기서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의 설교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했다는 말은, 그가 ‘미신적인 불안감’에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소문 중에는 그가 죽인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로데의 ‘미신적인 불안감’은 양심의 가책도 아니고, 죄책감도 아니고, 세례자 요한의 귀신이 나타나서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라는 말을 헤로데 쪽에서 생각하면, 이 말은 자신이 세례자 요한을 죽였음을 ‘자백’하는 말과 같은데,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말은 헤로데라는 당시의 통치자가 요한을 죽였음을 확인하는 공식 기록이 됩니다.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말은, 헤로데가 부활 자체를 안 믿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귀신의 존재는 믿었지만, 부활은 안 믿었습니다.> “여러 가지 소문을 종합해 볼 때, 예수라는 사람이 요한의 귀신은 아닌 것 같고, 부활 같은 것은 믿을 수 없고, 그러면 예수라는 사람은 대체 무엇인가?”가 그가 한 말의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라는 말은, 헤로데가 예수님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그 호기심은 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불순한 호기심’입니다. 뭔가 신기하고 색다른 것을 한 번 구경해 보고 싶다는 정도의 호기심... <헤로데 집안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족 후손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을 안 믿었고, 성경에 관한 지식도 없었고, 율법을 지키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집안은 겉으로는 유대교와 유대교의 율법과 관습 등을 존중하는 척 했지만, 그것은 신앙도 아니었고,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2) 헤로데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 것과 예리코의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애를 썼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루카 19,1-4).”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애쓴 것은 ‘구원’을 갈망했기 때문이고, 그 갈망은 헤로데의 호기심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3) 나중에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 빌라도는 이 사람이 갈릴래아 사람이냐고 묻더니, 예수님께서 헤로데의 관할에 속한 것을 알고 그분을 헤로데에게 보냈다. 그 무렵 헤로데도 예루살렘에 있었다. 헤로데는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오래전부터 그분을 보고 싶어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어떤 표징이라도 보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로데가 이것저것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그 곁에 서서 예수님을 신랄하게 고소하였다. 헤로데도 자기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루카 23,6-11).” 자캐오는 ‘메시아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보잘것없는 죄수를 만났을 뿐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 덕분에 ‘구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메시아를 조롱하는 죄만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헤로데를 밀어내신 것이 아니라, 헤로데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4) 루카복음 13장에, 헤로데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1-33)” 헤로데가 예수님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도, 죄책감도 없었음을 나타내고, 또 그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일만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 라고 표현하셨는데, 이 말은 헤로데의 교활함과 간사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인간 세상의 권력은, 하느님 앞에서는 ‘하찮은 것’, 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멸망을 향해서 가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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