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금요일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루카 9, 2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군중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군중의 대답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이 대답은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을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의 틀 안에서 이해하려 하고, 역할, 직업, 과거의 이력, 사회적 범주로 상대를 규정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른 차원에서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고백은 논리나 추론이 아닌, 깊은 내면에서 솟아오른 직관적 깨달음입니다. 존재의 심연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앎’의 빛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깨달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마치 우리에게 침묵의 공간을 선물하듯이 참된 깨달음은 언어로 다 담을 수 없고, 성급한 설명은 진리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 속에서만 온전히 무르익는 인식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이 길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넘어, 존재의 변화를 상징하는 여정입니다. 고난과 배척은 낡은 자아 구조가 무너져 내리는 고통의 순간, 죽음은 에고적 정체성을 완전히 내려놓는 절정, 그리고 부활은 새로운 존재 차원으로 태어나는 변화를 뜻합니다. 참된 영적 성장은 반드시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보여주십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너는 누구인가?” 그 답은 사회적 역할이나 타인의 평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붙여온 이름표들—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좋은 부모", "부족한 자녀", "완벽해야 하는 사람", "상처받은 사람"— 이 모든 낡은 이름표가 하나씩 떨어져 나갈 때, 비로소 참된 나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빚어진 존재, 깊은 평화 속에 거하는 영혼, 그 모든 개념조차 넘어선 순수한 생명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오직 존재의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고요한 직관의 앎,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자기 이해— 그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빛을 향해 있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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