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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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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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27 | 조회수45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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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 루카 9,43ㄴ-45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벌써 두번째로 당신께서 겪으셔야 할 수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하시는데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원래 듣고 싶지 않은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었다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금새 잊혀지는 법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드시는 비유를 들었을 때와는 달리 그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묻지 않는 것을 보면, 제자들도 그분 말씀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진 못해도 예수님께, 그리고 자신들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다다르시면 수많은 군중들이 자기들 겉옷까지 벗어 바닥에 깔며 그분을 열렬히 환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 한 마디, 직접 보여주시는 기적 하나에 경탄하며 열광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금새 돌변하여 예수님을 비난하고 배척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되지요. 그것이 우리가 이미 그 결론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사람들의 환영과 열광, 그리고 비난과 배척... 서로 극단적으로 멀어보이는 이 두가지 태도는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비난과 배척이 자신들과는 아주 먼 ‘남의 일’이기를 바라는 건 군중들의 환영과 열광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제자들의 바람일 뿐이지요. 정작 양쪽 모두에 직면한 당사자인 예수님께는 둘 사이의 경계가 무의미합니다. 당신을 떠받드는 열광에도 교만해지지 않고, 당신을 밀어내는 배척에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분이니까요.
오늘의 제1독서에서는 즈카르야 예언자가 본 환시를 통해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완성된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중 오늘 복음과 연관되는 특징적인 구절은 이 부분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하느님은 물질적인 돌로 세운 성벽을 없애고 활활 타오르는 불의 벽으로 예루살렘을 둘러싸주겠다고 하십니다. 불로 둘러싸이면 많은 민족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이 불은 모세가 목격한 떨기나무를 둘러싸고 있던 그 불, 활활 타오르면서도 나무를 태우지 않는 ‘성령의 불’입니다. 우리를 서로 배척하고 단절되게 만드는 더러운 영과 달리, 성령은 이해와 포용을 통해 우리를 일치하게 만드는 영이시기에, 그 영으로 예루살렘의 벽을 세우신다는 건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시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서로 일치하여 하나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이지요.
다시 오늘 복음으로 돌아와서, 나의 인간적인 기준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고 그 사이에 높은 벽을 세워 나쁜 것이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려고 들면, 작은 고통과 시련에도 이리저리 크게 휘청대느라 구원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그분 뜻을 중심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규정하는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같은 구분에 휘둘리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지요.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게 주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 말씀이 내 뜻이나 기대와 달라도, 그 말씀대로 따르면 당장 손해보거나 희생할 게 뻔해보여도 묵묵히 주님 말씀대로 살면, 주님께서 내 삶 한가운데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나를 좋은 길로 이끌어주실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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