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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신앙생활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니 생색낼 것이 없습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05 조회수32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5-6)”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7-10).”

1) 7절-10절의 말씀은, 자신의 신앙생활과 신심행위 등을

생색내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 생색낼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과시할 것도 없습니다.

그 점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3.26-27).”

바오로 사도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선교활동을 한 것은

“그 자신도 복음에 동참하기 위해서”, 즉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선교활동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들을 생색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2) 예수님의 말씀에 묘사되어 있는 주인의 모습은,

하느님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당시 주인들의 실제 모습을 예로 든 것입니다.

이 말씀과 정반대되는 표현이 앞의 12장에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이 말씀은, 충실한 신앙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은총과 행복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서’(‘내가 구원받으려고’),

즉 ‘나 자신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보면서 기뻐하시고 고마워하십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3) 뒤의 18장에 있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0-14).”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말이 있어서,

‘바리사이의 기도’가 겸손한 기도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말은

그냥 ‘빈말’이고, 그 바리사이의 감사는 ‘거짓 감사’입니다.

바리사이의 기도를 잘 살펴보면,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라는 말은, “나는 의인이고, 저 세리는 죄인이다.” 라는

뜻으로 한 말이고,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교만죄와

남을 함부로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죄를 짓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다는 말은, ‘기도’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랑’입니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라는 말씀은, ‘빈말’과 ‘자기 자랑’만 한

그 바리사이는 구원받지 못했고, 진실하게 회개한

세리만 구원받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바리사이의

기도는 받아들이시지 않았고, 세리의 기도만 받아들이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는, “교만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겸손한 사람만 들어간다.”입니다.

4) 6절의 ‘믿음’에 관한 말씀은,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가 아니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믿어라.”입니다(루카 1,37).

‘기적’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그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의 힘의 위대함’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만 있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주님께 기도하지는 않으면서 자기 힘으로 기적을

일으키려고 시도하는 오만하고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사이비가 되고 이단으로 빠집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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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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