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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7주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05 조회수70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27주일 다해] 루카 17,5-10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교회 공동체에서 봉사하는 보람은 어디서 올까요? 내가 열심히 봉사한 만큼 나와 내 가족이 더 큰 영광과 복을 누리는데에서? 아닙니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 챙기는 이기적인 이들이 세상에서 더 큰 부와 영광을 누리고 떵떵거리며 살지요. 그러면 내가 희생하고 고생하는 만큼 나와 내 가족만큼은 불의의 사고, 슬프고 괴로운 일을 겪지 않고 잘 피해가는데에서?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해서 그분께서 내 앞에 놓인 시련과 고통을 치워주시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당신을 따르려면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니 말이지요. 그렇기에 이런 두 가지를 신앙생활하는 목표이자 보람으로 삼으면 금새 실망하고 좌절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보람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인간적인 실망과 절망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성실하게, 끝까지 하느님 뜻을 따르며 기쁘게 살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믿음’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은 주님께 이렇게 청하지요.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일꾼으로 뽑으신 그들이,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참된 믿음으로 이끌어야 할 그들이, 오히려 자기들에게 믿음을 더해달라고 청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찰 노릇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낸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길래 이제와서 그런 청을 하는 것일까요? 그건 그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개념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일종의 신통력(神通力)으로 여겼습니다. 주님께서는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며 죽은 이들까지 되살리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시는데 자기들은 그러지 못하는 것도, 그런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여겼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고자 하신 것은 그런 초능력 같은게 아니라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지켜주시고 보살피신다는 분명한 확신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그런 확신을 품고 있는 사람은 세상의 것들을 쫓으며 자기 위주로 살던 모습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며 하느님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곧 나누고 베풀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놀라운 삶의 기적들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 기적들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바로 주님께 대한 참된 믿음인 겁니다.

 

그런 참된 믿음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와 성공을 가져다주는 능력은 크고 작음, 혹은 많고 적음 같은 ‘숫자’로 가늠되고 평가되지만, 주님께 대한 믿음이 참된지 아닌지는 주님 말씀을 철썩같이 믿는 확고함에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는 순수함에서 드러납니다. 마음 속에 주님께 대한 확고하고 순수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겨자씨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 믿음에서 우러나온 단 한 마디 말로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킬 수 있지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믿음과 순명을 통해 뜻하신 바를 곧 현실로 이루시는 하느님의 권능이 예수님께 전해진 것처럼, 주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과 순명을 통해 주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그 권능과 힘이 우리에게도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자리에서 “너희가 믿는대로 되어라”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겨자씨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 크기가 다른 것들보다 커서가 아니라, 그 안에 겉으로 드러나는 씨앗 자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믿음’이 우리에게 그런 가능성과 생명력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지금 내 모습이 작고 볼품 없어도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인간적인 한계와 부족함을 극복함으로써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를 그렇게 성장시켜 주는 참된 믿음을 지니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이미 나에게 베풀어주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따르는 일에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종과 주인의 비유’를 통해 그 두 가지 마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지요.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 종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게 ‘당연’한 것처럼, 하느님의 종인 우리가 그분 뜻을 따랐다고 해서 그분 앞에서 생색내거나 대가를 요구할 수 없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우리의 처지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종으로라도 당신 집에 받아주지 않으시면, 그분의 도움과 보살핌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부족하고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큰 자비와 은총을 베푸시어 살게 하시는 하느님께 먼저 감사를 드림이 마땅합니다. 또한 내가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헤아리거나 갚을 길 없는 큰 은혜를 입었다면, 그분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그분께 보답하는 길입니다. 그 보은의 과정에 대가를 요구하고 보상을 바라는 불순한 마음이 끼어들 자리는 없지요. 그런 불순물이 끼어들어 마음이 탁해지면 하느님께 대한 참된 믿음을 지닐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확고하고 순수하게 지켜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힘을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들지 말고,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하고 약한 나에게 힘을 주시기를 기도 중에 청하며,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고통과 시련마저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탐욕과 집착에 휘둘려 화려하고 좋아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더 가지려 욕심내지 말고,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에 충실히 따르며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 내 안에 심어주신 훌륭하고 좋은 것들을 지키고 가꾸어야 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법입니다. 일단 하느님께서 내미신 손을 붙잡았으면 그분만 바라보며 그분께서 가시는 길을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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