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월 6일 수원 교구청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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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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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0-06 | 조회수45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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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감사와 나눔의 축제 [말씀] ■ 제1독서(요엘 2,22-24.26) 기원전 5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언자 요엘은 가공할 재앙 앞에서 참회를 통해서만이 구원이라는 선물 앞에 설 수 있음을 설파합니다. 심판에서 구원으로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참회이며, 이는 오직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열정과 불쌍히 여기심 덕분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풍성한 결실”을 맛볼 것이며, 두려움을 떨치고 “즐거움과 기쁨” 속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 제2독서(묵시 14,13-16) 묵시록 저자에게 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자리합니다. 현재는 죄악과 사악한 세력들이 지배하는 시대이고, 미래는 하느님과 그분께 선택된 이들이 승리하는 시대입니다. 갈등과 시련의 때인 현재가 다하면,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할” 때, 곧 하느님의 질서가 최종적이고 결정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가 가까웠으므로 지금이 그만큼 중요한 시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 복음(루카 12,15-21) 말씀과 행적으로 군중으로부터 당신의 의로움을 인정받으신 그리스도께 어떤 사람이 재산분배라는 이권 분쟁에 개입해 주시기를 요청하나, 주님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시면서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재물 자체가 참 생명을 보장해 줄 수 없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을 피폐화시키거나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재물로부터 해방되어 베푸는 삶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새김]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이스라엘 역시 고대부터 함께 모여 지내는 축제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무교절과 주간절과 초막절, 그리고 끝내 무교절과 병합된 파스카 축제가 대표적입니다. 이 축제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구원 업적, 특히 이집트 탈출이라는 해방 사건을 상기하고 기념했으며, 마땅한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하느님께 올리며 축제를 지냈습니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축제와 제물의 종류, 그 규정은 다양화되어 갔으나, 함께 모여 제물을 올리며 하느님께 감사의 예를 행했다는 데는 변함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의 모든 축제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와 긴밀한 관련 속에서 탄생했으며,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축제를 지내며 늘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상기하고 감사하고 현실화해 나갔습니다. 한가위 명절은 설 명절과 함께 우리 한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이 명절을 쇠는 우리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먼저 하느님께, 그리고 조상님들과 이웃 형제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이 마음을 나눔과 베풂으로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더 나누고 더 베푸는 데서 명절의 참 의미를 찾고 새기며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더 나누고 더 베푸는 가운데 풍요로운 한가위 명절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2,15-21: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1. 복음의 핵심 오늘 복음(루카 12,15-21)에서 예수님께서는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함을 강조하신다.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창고에 쌓으며 자기 생명을 안심시켰지만, 하느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 부르신다. 진정한 생명은 재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나눔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2. 교부들의 가르침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한다: “너에게 넘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창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De Nabuthe Jezraelita, 12) 재물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눔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굶주린 이에게 주지 않은 빵은 그들의 것이다. 헐벗은 이에게 입히지 않은 옷은 그들의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지 않은 돈은 그들의 것이다.”(Homiliae in Lucam) 나눔 없는 재물은 사실상 도둑질과 다름없음을 강조한다.
3.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재물의 사용자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것을 사용해야 하며, 우선 가족의 필요를 충족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쓰여야 한다.”(2404항) 사목 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 따라서 재물의 사용은 언제나 공동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69항)
4. 묵상 한가위는 풍요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나눔의 절기이다. 조상들께서 하느님께서 주신 햇곡식을 봉헌하며 감사드렸듯이, 우리도 기도와 미사를 통해 지난 1년의 은총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감사에 머무르지 않고, 나눔으로 감사의 열매를 맺을 때 참된 신앙이 완성된다. 어리석은 부자가 창고만 확장했듯이, 오늘 우리도 소비와 소유의 문화에 매몰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위의 의미는 “함께 나눔으로써 모두가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5. 삶의 적용 조상과 선조들을 기억하는 기도: 하느님 안에서 모든 세대가 하나임을 고백하며, 돌아가신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자.
감사 생활: 하루의 끝에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기도를 바침으로써 한가위의 의미를 연중 생활로 이어가자. 나눔 실천: 풍요의 상징인 추석에, 어려운 이웃에게 음식을 나누고 손길을 내미는 삶을 살자. 결론: 오늘의 한가위는 단순히 추수의 풍요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풍요의 기쁨을 완성하는 날이다. 성 암브로시오의 말씀처럼, 우리의 창고가 아니라 가난한 이의 손안에서 참된 부유가 드러날 수 있도록, 이번 한가위에 우리도 삶을 새롭게 결단해야 하겠다. 한상우 신부님_한가위."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 15)
잠시 멈춰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자.
세상이 바뀌어도 생명의 고향은 항시 존재한다.
추석명절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삶의 의미는 생명의 기쁨이다.
생명의 기쁨은 모두가 하나같이 소중한 생명의 기쁨들이다.
사람의 삶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생명 존중은 생명 중심이다.
생명이 있기에 행복과 여러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
다시 우리의 삶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생명의 기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쁨이다.
진정한 사람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기쁨이다.
고향을 고향으로 여길 줄 알며 생명을 생명으로 여길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이 하느님의 질서 안에서 서로 상생하는 것이다.
욕망이 빚어내는 욕망의 결과물들은 참으로 우리를 아프게한다.
고향을 찾는 추석 명절이 참으로 큰 가슴속 울림이 되는 것은
우리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쁨은 마음을 만나는 기쁨이다.
어머니의 모습을 만나고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만나는 마음의 만남이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고유한 역사가 있다.
가장 소중한 사랑의 마음을 만나는 추석명절이길 기도드린다.
우리의 그리움을 찾고 만나는 시간이다.
사람의 생명은 그리운 마음에 달려 있다.
그리움을 잃어가는 우리들 삶이다.
마음을 되찾아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리운 이들을 그리며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의 고향 마음의 추석이다. 조명연 신부님_2025년 10월 6일 한가위
고대 태국에서 하얀 코끼리는 굉장히 신성한 선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태국의 왕은 이 신성한 하얀 코끼리를 누구에게 선물했을까요?
1) 충직한 신하 2) 큰 공을 세운 신하 3)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
당연히 1번이나 2번 같지만, 태국의 왕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이 신성한 하얀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하얀 코끼리는 신성한 동물이기에 비싼 먹이를 먹여가며 귀하게 키워야 했습니다. 밭일에 활용하거나 이동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가 없었지요. 따라서 하얀 코끼리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쓸모는 없는데 관리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처치 곤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태국의 왕은 막대한 먹이 비용과 관리 비용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가 파산하도록 하얀 코끼리를 선물한 것입니다. 더 잘해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또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다면 당연히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하느님 뜻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얀 코끼리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오히려 장애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뜻에 맞춰 사랑의 완성을 위해 나의 재물과 시간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며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느님과 우리가 있게끔 해 주신 조상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이 명절의 그 기쁨을 가족 및 이웃과 나누는 명절입니다. 결국 한가위의 정신은 ‘감사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감사의 대상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기가 아닙니다. ‘나’를 넘어 조상, 하느님, 그리고 우리 공동체로 향합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거두었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과 소유로만 여깁니다. 그의 계획에 하느님도, 조상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오직 ‘내 곡식’, ‘내 재물’,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부자가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만 재물을 모으면서, 정작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가 기준에 서면, 하느님의 뜻은 자리하지 못합니다. 하얀 코끼리를 키우는 것이 되고 맙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이번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기에게 감사하는 어리석음은 모두 버리고, 하느님과 조상님께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꽃은 옆에 있는 것과 경쟁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피어날 뿐이다(젠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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