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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주님의 기도’는 신앙인이 지켜야 하는 ‘생활 지침’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08 조회수2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1-4)”

1) 여기서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는

말은, 표현만 보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으로 보이는데, 뜻으로는 기도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입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바치는

기도문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기도문을 갖고 싶어 했던 것

같고,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문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2) ‘주님의 기도’는, 우리 교회의 대표 기도이고,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의 전반부는 신앙생활의 목적을 나타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기를 청하는 기도와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청하는 기도는, 하느님의 구원사업과

하느님 나라가 하루 빨리 완성되기를 바라는 기도이고,

동시에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그것을 잘 나타내는 말이 요한복음에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우리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이나 빌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만을 희망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만 원하고, 그런 것들만

얻으려고 기도하는 것은 기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그냥 미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이나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 생명을 얻는 것이 구원이고, 하느님 나라는 그 생명을

얻어 누리면서 영원히 사는 곳입니다.>

3) ‘주님의 기도’ 후반부는 신앙생활 지침,

또는 신앙인들이 지켜야 할 ‘삶의 지침’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오늘’을 살아가게 해 주는 양식입니다.

‘내일의 일’은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내일의 일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내일’은 하느님의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늘 먹을 양식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구약성경 탈출기에 있는 ‘만나’ 이야기와(탈출 16장)

바오로 사도의 다음 권고가 그것을 잘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7-8.10).”

4) ‘주님의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 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 우리가 함께

들어가야 할 나라이고,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모든 사람이) 함께 먹어야 할 양식입니다.

<남이야 굶든지 말든지 자기 혼자서만 배불리 먹는 사람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자격이 없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아주 많이, 그리고 자주

강조하셨는데, 주님의 기도에서도 특별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가르치는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서로 용서하여라.”이지만,

용서를 실천해야 하는 우리는 “용서는 내가 먼저 한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인의 믿음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사랑에서 용서가 나오고, 용서에서 일치와 평화가 생깁니다.

그 일치와 평화에서 일용할 양식의 나눔이 이루어집니다.

하느님 나라는, 믿음, 사랑, 용서, 일치, 평화가

완성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6)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마귀의 유혹이든지, 내적 욕망이나 세속에서 오는

유혹이든지 간에 ‘기도’는 유혹을 물리치는

대단히 강력한 무기이고, 유일한 무기입니다.

신앙인은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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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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