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 너희는 불행하여라!” 루카 11,44
불행의 반대편에는 사랑이 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예수님의 목소리는 꾸짖음이라기보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를 향한 탄식처럼 들린다.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에는 무관심한 사람들. 율법의 조항은 완벽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생명을 잃었다. 예수님은 '무덤과 같은 존재'라 하신다. 겉은 깨끗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없다. 사람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지만, 그 안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보다 더 슬픈 신앙이 있을까.
오늘 기념하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도 이 불행을 알았다. 데레사 수녀님은 수도원의 완벽한 규칙들 안에서 20년을 보냈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정해진 방식으로 수행했다. 겉으로는 흠 없는 수녀였지만, 자신의 자서전에서 고백한다. 기도 시간에 산만했고, 기도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형식은 완벽했지만, 그 안에 생명은 없었다.
나도 다르지 않다. 규칙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봉사를 하지만 정작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이 식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오늘 내 삶에서 어떤 모습일까?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것, 가족에게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미움 대신 용서를 선택하는 것. 이런 작은 사랑들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리 많은 기도와 헌금이 쌓여도, 그것은 형식일 뿐이다. 형식은 남았지만 생명은 사라진 자리, 그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행'의 자리다.
그러나 이 말씀의 끝에는 희망이 있다. 예수님은 '불행'을 선언하시면서 동시에 나를 '사랑의 중심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데레사 수녀님은 그리스도의 상처 앞에서 회심했다. 율법의 무게는 사라지고 사랑의 초대만 남았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규칙 준수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의 관계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하느님은 화려한 전례 안에서만이 아니라, 물 길어 오는 우물가에서, 피곤한 자매를 위로하는 그 순간에, 일상의 작은 일들을 큰 사랑으로 할 때 우리를 만나신다고 하셨다.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사람에게 짐을 더하지 말고, 네 믿음이 다시 사랑 안에서 숨 쉬게 하라. 그 부르심 앞에서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내 신앙은 누군가를 살리고 있는가? 사랑 없는 신앙은 무덤과 같고, 사랑이 깃든 삶은 부활의 빛을 품는다.
오늘, 예수님의 탄식은 나를 향한 초대다. 죽은 신앙에서 깨어나 다시 사랑으로 숨 쉬는 존재로 돌아오라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초대다. 사랑은 거창한 결심보다,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서 되살아난다. 무거운 율법의 짐을 벗고 사랑의 중심으로 돌아오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결국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종종 신앙을 '해야 할 일'로 여겼다. 기도해야 하고, 봉사해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신앙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내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데레사 성녀가 맨발의 개혁을 시작한 것은 가난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화려한 제단을 벗어던지고, 권위의 옷을 벗고, 오직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대화 안에서 살고자 했다. 그 초대에 응답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는 것, 마음에 담아둔 원망을 내려놓는 것, 작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 이렇게 한 걸음씩, 사랑은 다시 내 안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데레사 성녀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이라고 하셨다. 형식이 아닌 사랑으로.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오늘, 나는 데레사 성녀가 걸었던 그 길을 다시 살아 있는 신앙으로 걸어간다. 작은 일에도 큰 사랑으로.
<내면의 성 - 아빌라의 테레사> 도서의 표지 뒷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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