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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믿음의 힘 “두려워하지 마라”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17 조회수30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5.10.17.금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35-107) 기념일

 

 

로마4,1-8 루카12,1-7

 

 

믿음의 힘

“두려워하지 마라”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시편32,1-2)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믿음 교육이 우리에게도 좋은 도움이 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는 예수님 모습에 열광한 군중들이 주님께 몰려 들자 서로 밟힐 지경이 됩니다. 예나 이제나 진리를 목말라 주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의 위선을 환기시킵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믿음을 부패하게 하는 위선의 누룩입니다. 참으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위선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위선이 없어 담백하고 투명하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본질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우리의 믿음을 북돋웁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비밀은 없습니다. 누가 보든 말든 복음 선포에 투명하고 당당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복음 선포의 삶을 통해 드러나고 확인되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께 청할 바 믿음의 은총뿐입니다. 정말 믿음의 사람들은 투명하고 솔직담백합니다. 위선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요셉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입니다. 신구약 통틀어 365회 나온다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인간 누구나의 원초적 정서입니다. 요즘같이 시끄럽고 혼란한 세상일수록 두려움과 불안은 증폭되기 마련입니다. 흡사 두려움과 불안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같습니다. 답은 믿음뿐입니다. 믿음의 빛이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에 곧장 이어지는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믿음을 북돋우며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시편의 다음 고백도 기억할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빛 내 구원이시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께서 내 생명의 바위시거늘, 내 누구를 무서워하라.”(시편27,1)

“주님을 기다리며 너는 아귀차거라, 

 네 마음 굳게굳게 주님을 기다리라.”(시편27,14)

 

‘아귀처거라’는 마음을 굳세게 먹고 남에게 꺾이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끝없이 주님을 기다리는 인내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 모두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 벗이라 말씀하시니 더욱 반갑고 고맙습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단숨에 읽혀지는 주님 말씀입니다. 정말 두려워할바 세상이나 사람이 아닌 하느님뿐임을 천명하십니다. 일어나는 것이 다 하느님의 뜻은 아니나, 하느님의 허락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공포와 전율의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두려움, 경외의 두려움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때 세상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 세상이나 사람 모두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이나 사람들의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방법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바로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지옥의 심판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고의적 불신으로 하느님께로 떨어져 나감으로 자초하는 것입니다. 진정 죽음은, 지옥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까지 죽음을 의미하는 주님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육신은 살아 있다 해도 주님과 무관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진정 살아 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할 때, 점차 세상이나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믿음의 모범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 역시 우리의 모범이 됩니다. 다윗 역시 아브라함처럼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다음처럼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값싼 평화가 없듯이, 값싼 은총도, 믿음도 없습니다. 참으로 치열히 주님을 섬기고 순종해온 믿음의 삶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오늘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로마의 성 클레멘스,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포와 함께 사도교부에 속하는 분이자 사도 요한의 제자인 성 이냐시오입니다. 

 

로마에 압송되어 맹수형으로 순교직전 7통의 편지를 썼고 당시 교회생활에 대한 귀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역시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편지에서 성인의 위대한 믿음의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생명을 얻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고, 제가 죽음의 상태에 있기를 원하지도 마십시오. 저는 모든 교회 편지를 쓰고 있으며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이 막지만 않는다면, 저는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겠습니다. 간청하건데 제게 때 이른 은혜를 베풀지 마십시오. 제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인 짐승들에게 먹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하느님의 밀입니다. 저는 맹수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품위와 위대함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지극한 믿음이 주님을 감동케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니 믿음으로 최선을 다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진인사대천명의 각오 역시 믿음의 자세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부족한 믿음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마음 바른 이들아, 모두 환호하여라.”(시편32,11).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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