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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신부님_ <신앙생활의 궁극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으면 안 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17 조회수26 추천수0 반대(0) 신고

<신앙생활의 궁극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는 동안에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루카 12,1-7)”

1)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를 바로 앞의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조심하여라.”에 붙여서 읽으면, “위선은 언젠가는 반드시

위선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위선’을 ‘바리사이들의 누룩’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바리사이들의 위선이 다른 사람들을

물들여서 위선자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조심하여라.”는,

“너희는 바리사이들 같은 위선자가 되지 마라.”입니다.

‘위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면, 위선자들의 위선은 모두 드러날 것이고,

엄한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입니다.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를 바로 뒤에 있는

3절에 붙여서 읽으면, 이 말씀은, “너희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복음은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복음 선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받을 몫이 없을 것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능동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라는 말씀이, 마태오복음에는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라는 명령입니다.

<복음 선포는, 또는 선교활동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행해야 할 신앙인의 사명이고 본분입니다.

그런데 선교활동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가 잘하는 방식으로 하면 되고,

자신의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면 됩니다.>

3)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씀은,

요한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3-1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나의 벗’이라고 부르신 것은, 당신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제자들을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당신이 제자들을 보호하고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박해자들을 무서워하지 마라.”이고,

“육신의 죽음을 무서워하지 마라.”이기도 합니다.

“...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는,

“하느님만 섬겨라.”이고,

“영혼의 멸망을 두려워하여라.”이기도 합니다.

박해자들에게 육신의 목숨을 빼앗기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지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생활도

아니고, 무병장수를 누리려고 하는 생활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려고

온 삶을 다 바쳐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박해자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아무 권한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그자들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4) 하느님께서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과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우리의 신앙생활을 세세하게 잘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잘 알고 계시니까 그대로 갚아 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귀한 존재다.”,

즉 “너희는 하느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다.” 라는 뜻입니다.

<“왜 하필이면 참새를 비교 대상으로 삼으셨을까?”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참새’는 박해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수님 말씀은, “박해자들은

참새들보다 더 하찮은 존재다.” 라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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