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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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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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0-17 | 조회수41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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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 루카 12,1-7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위선’이란 본래는 선하지 않은데 사람들에게 선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행동을 일컫지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이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사람들과 친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기 혼자 외톨이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엄청나게 의식합니다.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기준에 이르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다 정작 자기 본모습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것 같으면, 이미 내 과거와 본모습을 다 알고 있어서 굳이 잘보이지 않아도 되는 이들하고만 함께 있으면 탐욕과 집착, 시기와 질투 같은 내 마음 속 괴물들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 눈치 좀 그만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세상에 묶어두고 걱정 속에 가두는 가짜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하십니다. 그러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볼 때에만 선한 척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악함에 빠져드는 ‘이중생활’ 속에서 점점 지쳐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 속의 끔찍한 나 사이의 큰 괴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음이 무너져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짜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된 두려움을 지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맡겨두신 생명을 언제든 되찾아가실 수 있는 분, 내가 죽은 후 나의 영혼을 지옥에 던질 수 있는 심판의 권한을 지니신 분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오직 하느님 뿐이지요. 그런데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처럼 그분 시선을 피해 숨으며 그분으로부터 멀어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항상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분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 어쩌나, 그래서 그분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면 어쩌나 항상 조심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다보면 내 마음이 하느님 뜻과 일치하여 내 겉모습까지 그분을 닮은 참된 자녀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가 참 어렵습니다. 쉽고 편한 것을 먼저 찾는 나약한 우리들이기에,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실천하기가 그만큼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렇게 하느님 뜻을 망각하며 살다보면 부족한 자기 모습 때문에 양심이 찔려서 어느 순간부터 하느님을 ‘무서워’하게 됩니다.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자신이 하느님께 있어서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임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용서와 자비를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기에 날이 갈수록 죄책감과 자괴감이 커져가지요. 그러다 나중에는 그런 자기 모습을 위선으로 감추고, 심판과 단죄의 화살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는 가혹하고 무자비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속에 사는 사람은 다른 이를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않습니다. 안쓰러움과 공감으로,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선한 지향으로 이웃과 형제들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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