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 |||
---|---|---|---|---|
작성자조재형
![]() ![]() |
작성일2025-10-20 | 조회수29 | 추천수1 |
반대(0)
![]() |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과 관련된 소식은 늘 관심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300명 넘게 구금되었던 일, 손에는 수갑 그리고 발에는 쇠사슬로 묶였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중대한 범죄를 범한 것도 아닌데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주일 만에 근로자들은 가족의 품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만나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유감을 표했고,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의 근로자들이 다시 와서 일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관세 협상에 대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 3,500억 불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관세를 15%로 해 주겠다는 미국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그런 미국의 요구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3,500억 불이면 한국의 외환보유고의 8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막대한 지출이 있으면 한국은 제2의 IMF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미국 정부는 관행처럼 있어 왔던 한국 근로자들의 미국 내 노동에 대해서 강도 높은 조사와 체포를 감행했을까? 왜 미국 정부는 한국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하며 관세 협상을 하려는 걸까? 그런 미국 정부의 행동과 결정이 과연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걸까?’ 국제 정치와 외교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던 제게는 의문을 풀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그와 같은 행위는 마치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있었던 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패한 독일은 엄청난 액수의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한국이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은 독일이 연합국에게 배상해야 하는 금액과 비율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독일은 전쟁에서 졌기에 그런 책임이 있지만 한국은 전쟁한 것도 아닌데 그런 투자 요구는 마치 전쟁 배상금을 내라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일본은 미국의 그런 과도한 요구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외화 보유액도 넉넉하고, 통화 맞교환을 할 수 있기에 부담이 적다고 합니다. 중국과 브라질과 같은 나라는 미국이 높은 관세를 요구하면 미국 제품에 대해서 같은 관세를 요구한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 정책을 통해서 기존의 국제 질서를 혼란케 하는 미국의 정책이 바뀔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모기는 아주 작지만 매우 귀찮습니다. 소리 없이 다가와 물기 때문입니다. 밤에 잠자리에서 모기에게 물리면 짜증이 나고, 결국 불을 켜고 모기를 잡기 마련입니다. 책은 사소한 일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기와 같은 사소한 일 뒤에 커다란 코끼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꽉 끼는 신발을 신으면 발의 뒤꿈치가 까질 수 있습니다. 불편한 신발을 신고 지하철을 탔을 때 누군가 실수로 발을 밟으면 평소와는 달리 더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신발 속에 감추어진 뒤꿈치의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몸의 감추어진 상처는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무시당한다는 생각, 간섭받는다는 생각, 나의 허물을 들추어낸다는 생각, 실패한 일들에 대한 생각들은 나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작은 일을 통해서 주체하기 어려운 ‘화’가 되기도 합니다. 사제 생활하면서 익숙해진 편리함이 있었습니다. 식사할 때면 으레 음식이 먼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릴지라도 먼저 앞자리로 가라는 권유를 받곤 했습니다. 순례를 가는 버스에서도 맨 앞자리에 앉곤 했습니다. 조별로 자리를 바꾸었지만, 저는 자리를 바꾼 적이 없었습니다. 민박집에 가서도 독방을 마련해 주곤 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불편하게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자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라시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모습이 제게 있었습니다. 사제복 안에 겸손, 희생, 나눔, 봉사, 인내가 있어야 했는데 권위, 자존심, 가식, 허영,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화’를 낸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의 무례함 때문에 많은 사람이 화가 났지만, 사제라는 이유로 참아 주셨습니다. 화가 난다면 그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코끼리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담의 불순종과 예수님의 순종을 이야기합니다. 아담이 했던 불순종의 결과는 죄와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순종의 결과는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담의 불순종 뒤에 있던 코끼리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비열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 뒤에 있던 코끼리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사람이 되셨던 겸손함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려는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들고 깨어 있는 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렇게 깨어서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은 어떤 등불인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가식, 교만, 게으름, 허영, 분노의 등불을 들고 있으면 그 등불은 본인과 이웃에게 큰 상처를 주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희생, 나눔, 겸손, 온유의 등불을 들고 있으면 그 등불은 희망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사랑이 환하게 피어나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