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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늘 깨어 있어라!” <주님을 기다리는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21 조회수3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10.21.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로마5,12.15ㄴ.17-19.20ㄴ-21 루카12,35-38

 

 

“늘 깨어 있어라!”

<주님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 깨어 있음의 훈련>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찾으려 제가 왔나이다.”(시편40,8ㄴ과9ㄱ)

 

“깨어 있어라!”

오늘 복음 주제입니다. 예나 이제나 수도생활의 궁극 목표이자 끊임없는 기도가 지향하는 바가 늘 깨어 있는 삶입니다. 영성생활의 진위를 가늠하는 깨어 있는 삶입니다. 참으로 진짜 삶은 깨어 있는 삶이요, 제 집무실 게시판 가장 위에 붙어 있는 말마디가 “늘 깨어 있어라!”입니다. 과연 하루중 온전히 깨어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깨어 있는 삶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 들어라. 말의 청자는 바로 화자 자신이다.”<다산>

“옛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논어>

 

깨어 있는 삶은 종파를 초월하여 영성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의 보편적 목표이겠습니다. 아주 예전부터 깨어 있는 삶을 소망하며 써놓은 '해바라기'와 '이슬방울'이란 두편의 시도 생각납니다.

 

“한숨 못자고

 밤새 꼬박 온통 깨어 있었구나

 해바라기

 낮에만 아닌 밤에도

 해바리기

 사람보다 낫네.”<2000.6.22.>

 

 “당신께 맺혀 있는 이슬 방울되어

 영롱하게 깨어 살다가

 당신 안에서

 흔적없이 사라지는 인생이고 싶다.”<2000.8.6.>

 

수도원 성전 뒷면 양쪽 한복판에도 깨어 있는 눈의 올빼미 대형 사진이, 또 제의방에도, 제 집무실 책상위에도 영롱한 눈의 핀란드 흰올빼미 도자기상이 자리하고 있어, 늘 깨어 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음의 훈련이 참 깊고 넓습니다.

 

깨어 있음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음은 경청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쁨입니다.

깨어 있음은 경배입니다.

깨어 있음은 주님의 현존입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지혜입니다.

깨어 있음은 겸손입니다.

깨어 있음은 찬미입니다.

깨어 있음은 감사입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일치입니다.

깨어 있음은 개방입니다.

깨어 있음은 환대입니다.

깨어 있음은 순수입니다.

깨어 있음은 평화입니다.

깨어 있음은 생명입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자유입니다.

깨어 있음은 화해입니다.

깨어 있음은 위로입니다.

깨어 있음은 치유입니다.

깨어 있음은 은총입니다.

 

깨어 있음은 모두이니 그 은혜가 끝이 없습니다. 맑게 깨어 있을 때, 깨어 흐를 때 유혹도 이길 수 있고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연한 깨어 있음은 불가능하니 곧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희망과 기쁨, 설렘이 있을 때, 만남의 희망과 기쁨, 설렘을 기대할 때 항구한 인내의 깨어 있음도 가능합니다. 바로 주님을 기다리는, 만남의 희망과 기쁨이, 설렘이 한결같이 깨어 살게 합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오늘 복음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 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님을 깨어 기다리다 만날 때 참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참행복의 기쁨에 사는 영성가들입니다. 주인은 주님으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가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속한 옛 사람의 아담이지만, 깨어 있을 때는 은총과 사랑이 충만한 새 사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깨어 있는 종들을 맞이하여 시중을 드는 주인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깨어 기다리다 만나는 주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깨어 기다리다가 주님을 만나는 우리들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우리 모두 깨어 살도록 더욱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여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아마도 죽음을 통해 주님의 찾아 오심도 이러할 것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저절로 깨어 있는 삶은 없습니다. 역시 깨어 있는 삶의 선택과 훈련과 습관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우리 수도공동체가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는 그대로 깨어 있는 삶을 위한 영적공동훈련이기도 합니다. 

 

여기다 향심기도, 비움기도등 개인의 영적취향에 따라 습관화한다면 늘 깨어 있는 삶도 가능합니다. 이런 깨어 준비된 삶을 위한 평생영성기도훈련은 필수입니다. 깨어 준비된 삶은 우리가 하등 걱정할 이유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체험은 우리에게 주님의 부르심은 가장 예기치 않은 시간에 온다고 말합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미래는 ‘그 스스로 돌보도록’(to take care of itself) 내버려 두고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일은 내일대도 잘 될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문제되는 것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준비된 주님의 종들은 항구히 현재안에서 살며, 바로 거기서 주님을 찾고 만납니다. 그렇게 사는 삶은 ‘스스로 돌보며(takes care of itself)’ 미래도 그러합니다. 내일은 내일대로 잘되니 걱정할 것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있는 삶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주님을 찾는 이는 모두,

 주님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리이다.”(시편40,17ㄱ).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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