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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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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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0-24 | 조회수100 | 추천수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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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들었던 ‘청개구리’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엄마의 말씀을 거슬러 늘 반대로만 하던 청개구리. 세상을 떠나기 전, 엄마는 마지막 순간마저도 아들이 거역할까 두려워 강가에 묻어 달라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뒤늦게 마음을 고쳐 엄마의 뜻을 따라 강가에 묻었고, 결국 무덤은 비에 씻겨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에 나오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구절처럼, 강변은 평화로운 삶의 자리이자 동시에 슬픔이 깃든 자리가 되었습니다. 청개구리의 울음은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후회와 회한의 노래였습니다. 40년 동안 성당엘 열심히 다니던 어르신을 위한 하관 예절이 있었습니다. 누나는 동생에게 가능하면 옆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고 합니다. 동생은 누나의 부탁이 있었지만, 삶이 분주하기도 했고, 일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누나의 부탁이 생각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누나 옆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누나 옆으로 온 지 3달 만에 누나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누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요양 병원에 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성당 사람에게 알리지 말아라.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나중에 성당에 알려다오.” 평소에 누나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동생은 누나의 마지막 부탁이라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우연히 성당의 교우가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40년 동안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어르신의 마지막을 쓸쓸하게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동생에게 급히 연락해서 장례 예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가능하면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하면 좋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장지에 가서 장례 예식을 하였습니다. 누나의 말을 잘 들었던 동생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장지에는 동생 내외와 성당의 교우들이 함께 했습니다. 비록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하관 예절을 잘 마친 어르신은 천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께 사랑받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회개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사랑받는 사람은 ‘회개한 것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금연을 한다고 말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면 진정한 금연이 아닙니다. 회개는 인식의 전환이고, 인식의 전환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이야기는 ‘자캐오’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났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가진 것의 절반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겠습니다. 제가 빌린 것이 있으면 4배로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가족은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께 사랑받는 사람은 ‘본인의 뜻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성인 성녀들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욕심 때문에, 체면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비우는 사람이, 나누는 사람이, 먼 곳을 보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기를 바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악인이라고 해도 돌아서서 살기를 바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당신이 사랑하시는 신자들과 사제들을 위해서는 더욱 기다려 주시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더욱 바라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청개구리의 울음은 후회의 눈물이었지만, 신앙인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어야 합니다. 내 삶의 중심이 돈, 명예, 권력이었다면 이제는 믿음, 사랑, 희망으로 바꿀 때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생명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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