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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0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25 조회수115 추천수10 반대(0)

지금부터 46년 전에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때는 석간이었던 동아일보를 배달하려고 보급소엘 갔습니다. 신문 150부를 들고 배달 하고 나면 배도 고프고 그래서 신당동에 떡볶이 먹으러 자주 갔습니다. 요즘은 신문도 다들 오토바이로 배달하지만, 그때만 해도 오토바이 배달은 없었습니다. 신당동에는 음악이 있었고, 맛있는 떡볶이가 있었고 우리들만의 세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음악은 레이프 가렛의 "다함께 춤을 춰여"라는 신나는 댄스 음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진, 나훈아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보여준 산울림의 음악이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이 산울림의 음악을 좋아했고, 저도 물론 좋아했습니다. 산울림의 첫 번째 노래의 제목은 아니 벌써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신문을 배달하려는데 '호외'가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유고라고 했다가, 서거라고 했다가 결국은 대통령이 죽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였습니다.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분은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셨고, 민족의 근대화를 위해서 산업현장을 뛰어다니셨고, 수출 100억 불, 국민소득 1,000불을 위해서 밤낮으로 땀을 흘리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분의 앞모습만 보았습니다. 신문과 방송도 그분의 앞모습만 저에게 보여주었으니까요. 그 뒤 저는 그분의 뒷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무리하게 삼선개헌을 하였습니다. 긴급조치를 남용했습니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저항을 잔인하게 진압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무리하게 유지하려다가 가장 가까이 있는 측근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분이 죽은 지 46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세운 업적이나 그의 앞모습만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평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결국은 드러날 뒷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살아있는 사람은 결코 성인 품에 올리지 않습니다. 그가 많은 기적을 행했어도, 그가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았어도 그렇습니다. 그가 아무리 높은 직책에 있었어도 그렇습니다. 죽은 다음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성인 품에 올릴 수 있는지 조사를 합니다.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말과 내가 하는 행동이 비록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어느덧 나는 나의 욕심과 나의 이기심을 뒤에 감추고 있을 때가 많지 않았는지 생각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신앙인들은 이 세상에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평가받기를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도 절차가 있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재물이 많아서 될 일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서 될 일도 아닙니다. 머리가 좋아서 될 일 또한 아닙니다. 어떤 절차와 순서가 있을까요? 첫째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게 아닙니다. 회개는 세례를 받아 성당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겁니다. 어부였던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교회를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는 박해받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나병 환자 10명이 치유되었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찬양을 드린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한 사람에게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치유를 넘어서 영혼이 치유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행동으로 드러내면 하느님께서는 나의 죄를 눈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죄를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비이며,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둘째는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누추한 마구간에 태어나신 사건이 겸손입니다. 겸손이 희생과 봉사를 만나면 사랑이 꽃피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자리는 없다고 하십니다. 다만 십자가와 희생의 자리가 있다고 하십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에서 분열과 갈등은 겸손이 사라지면서 생겼습니다. 겸손의 빈자리에는 교만과 욕망이 넘쳐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의 교만한 기도보다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셋째는 항구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이웃을 위해서 나누는 사람이 더 많은 은총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시간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시계는 언제나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루에 두 번 시간을 알려 주는 시계는 시계가 아닙니다. 고장 난 시계는 쓸모가 없습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 와도 소나무와 전나무는 여전히 푸르다.’라는 뜻입니다. 참된 신앙은 언제나 감사하고, 늘 기도하며, 항상 기뻐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신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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