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 30 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10-28 조회수180 추천수9 반대(0)

저는 매 미사 30분 전 고백성사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외국인들이 찾아와 고백성사를 청하곤 합니다. 그분들은 미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고백성사만 보고 돌아갑니다. 처음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영어로 고백성사를 듣는 것도 힘들었고, 우리 교우들이 아닌 분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마치 가족을 위해 차린 잔칫상에 외부인이 와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2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부족한 제 영어 실력을 다듬어 주시는 하느님의 배려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아무도 먹지 않으면 버릴 수밖에 없지만, 외부인이라도 와서 음식을 나눠 먹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돌아보면 저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주셨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찾고,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저는 다른 것을 찾곤 했습니다. 세상의 명예, 권력, 재물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문의 끝은 허무와 후회인데 그걸 알면서도 그 문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에 자주 나오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바로 “Detour 우회하시오입니다. 원래는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는 표시입니다. 우회로는 시간이 더 걸리고 불편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야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무시하고 원래 길로 가려 하면 결국 돌아와야 하고, 때론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제 인생의 길목에서 이런 우회로를 경험했습니다. 30년 전, 미국에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젊고 자신만만했기에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시골 본당, 교구청, 청소년국, 그리고 안식년까지 다양한 우회로를 걷게 하셨습니다. 이때 떠오르는 말씀이 토마스 머튼의 고백입니다. “내가 걷는 길은 내가 정한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길이다.” 우리는 종종 곧장 가고 싶어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아가게 하십니다.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Detour’ 표지판을 보고 불평했습니다. “이 길은 내 시간을 빼앗는 길이야.” 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평생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들꽃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우회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우회로도 그렇습니다. 힘들고 불편한 길 같지만, 그 안에만 담긴 은총과 깨달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좁은 문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 재물을 좇는 사람에게 그 문은 너무 답답하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며,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그 길이 좁지 않습니다. 맹인가수 이용복 씨의 노래 어린 시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다시 올 수 없지만 잊을 수는 없어라.” 그리움 속에 살아 있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사실 하느님 나라와 닮아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경쟁과 계산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는 특별한 능력이나 재력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와 사랑, 희생과 나눔, 믿음과 희망이 그 열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단순합니다. 좁고 험하지만, 누구나 갈 수 있는 길. 희생과 나눔, 사랑과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 우리 인생의 우회로마다 숨겨진 은총을 깨닫게 하시고, 좁은 문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걸어갈 용기를 주십시오. 십자가와 사랑으로 여신 하늘나라의 문에, 우리도 함께 들어가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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