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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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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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03 | 조회수130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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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부 사제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동북부 모임에 참석했는데, 거리는 멀지 않아 매달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남부는 다릅니다. 차로 5시간, 멀면 10시간 이상 달려야 하니 자주 모일 수는 없습니다. 대신 1년에 한 번, 4박 5일 동안 길게 함께합니다. 멀리서도 달려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부들에게는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이자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갓 온 신부님들은 사목 정보를 얻고, 오래된 신부님들은 서로에게 용기를 얻습니다. 어떤 신부님은 새벽 3시에 출발해 8시간을 달려 하루만 참석하고 돌아갔습니다. 저도 장례미사가 있어 하루에 두 번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사제의 만남이 소중하고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제의 기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세 가지를 떠올려 봅니다. 첫째, 겸손과 헌신의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낮아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리사이의 거만한 기도보다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많은 돈보다 과부의 작은 헌금을 더 귀히 여기셨습니다. 사제의 참된 기쁨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아져서 섬기는 데 있습니다. 둘째, 상처를 치유하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마귀 들린 이를 치유하시고, 병든 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날 사제의 치유는 단순히 병자성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교우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눈물 흘리는 이를 묵묵히 들어주는 것, 그것이 곧 주님의 치유를 이어가는 길입니다. 셋째, 복음을 전하는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사제는 강론과 교리 교육으로, 그리고 자기 삶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본당에서 아이들에게 성체를 가르치고, 청년들과 신앙의 고민을 나누고, 어르신들에게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할 때, 그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알려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세상 명예와 성공에 매여 있는 사람은 그 초대를 거절합니다. 참으로 하느님 나라의 음식을 먹는 사람은 겸손하게 섬기고, 상처 입은 이를 치유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밥상을 함께 나누고, 웃고 울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예표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이는 사제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응답은 각자의 몫입니다. 우리는 본당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로 마지막 길에 성체를 모시는 교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구역 모임,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성가대와 봉사단체들. 이 모든 것이 이미 하느님 나라의 작은 잔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닮아 겸손과 헌신, 치유와 복음의 기쁨을 살아간다면, 하느님 나라의 큰 잔치에서 반드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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