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송영진 신부님_<하늘의 잔치는 그냥 잔치가 아니라 ‘생명의 식사’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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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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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09:20 | 조회수22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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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루카 14,16ㄴ-24).” 
 1)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라는 말씀으로 비유를 시작하셨는데, 24절을 보면, ‘내 잔치’ 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큰 잔치를 베푼 어떤 사람은 곧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잔치는 그냥 잔치가 아닙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의 양식’을 주는 ‘생명의 식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생로병사의 고통에 시달리면서 허무를 향해서 가는 자들아,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해서 생명의 양식을 잘 받아먹은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것이고, 응답을 거부하고 그 양식을 받아먹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2) ‘혼인 잔치의 비유’를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죽는구나.’(루카 15,16-17)” <작은아들은, 영적으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루카 15,20-24).”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혼인 잔치에 비유’에 맞춰서,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가 잔치를 미리 준비한 것으로, 그리고 작은아들에게 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타이르고 설득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잔치는 이미 준비되어 있고, 가서 먹기만 하면 되는 상황.> 그렇게 생각하면, 작은아들은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을 때에는 아버지가 타이르는 말을 안 듣다가, 굶주리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려서 집으로 돌아간 것이 됩니다. <배가 고프지 않다고 우기면, 억지로 먹일 방법이 없습니다. 육신의 배부름에만 취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굶주림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영혼이 굶어죽어 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3) 처음에 초대받은 자들은 좁은 뜻으로는 이스라엘입니다. 넓은 뜻으로는, 신앙인이 되긴 했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또는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하느님을 믿고 섬겼지만,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메시아를 배척했고, 그러면서 메시아께서 주시는 구원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첫 초대 때에는 참석하겠다고 대답했으면서도, 잔치가 시작되니까 참석하기를 거부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영예와 은총을 잃게 되었고, 그 영예와 은총은 그리스도교가 차지했습니다. 신앙인이 되었으면서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도, 응답만 하고 잔치 참석은 안 한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이가 진짜 신앙인입니다. 세례성사는 응답의 시작일 뿐입니다. 마지막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잘 들어가야만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완성됩니다. 
 4) 초대가 한길과 골목과 큰길과 울타리로 확대되는 것은,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뜻합니다. 나중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갑자기 붙잡혀 간 사람들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초대받은 순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24절의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끝까지 메시아를 믿기를 거부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한다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말씀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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