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의인들의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선뜻 나서서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부연합니다. 분위기를 고려해 볼 때, 이 사람은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행복을 미리 예찬 또는 자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래에 관한 부질없는 이 확신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어떤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이를 천상 잔치에 적용하십니다.
비유 말씀은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하는 말씀으로 열립니다. 여느 초대에서와 마찬가지로, 큰 잔치를 베풀기 이전에 이미 초대장 또는 초대의 말씀이 전달되었음이 전제됩니다. 첫 번째 시점입니다. 이 초대의 말씀에 이의가 제기된 적이 없었던 만큼, 초대한 이는 초대된 이들이 모두 이 잔치에 참석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기대감으로 종을 보내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알립니다. 두 번째 시점입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합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초대한 이의 식탁에 앉아 우정과 기쁨을 나누기보다는, 자기가 처해 있는 일을 우선시하여 결국 그 초대를 거절하는, 너무나 큰 실례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최소한 두 번째 시점 이전에 양해의 말씀을 구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제 세 번째 시점이 펼쳐집니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일렀다. ..... 내 집이 가들차게 하여라. 처음에 초배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시나이산에서의 계약 체결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천상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시점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두 번째 시점을 맞이합니다. 잔칫상이 준비되었으니, 초대에 응할 시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초대를 거부합니다. 재산 문제, 일상적인 업무에 대한 걱정, 인간관계 등이 하느님에 대한 관심을 앗아갑니다.
집주인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공동체로부터 축출된 사람들, 곧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잔칫상에 초대하십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자, 결국 계약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초대와는 본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을 향하십니다.
구원에 관한 왜곡된 확신과 오시기로 예고된 메시아 거부를 끝내 굽히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예수님은 철저한 반성과 함께 회개를 촉구하시는 듯합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 초대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을 부르시는 동안, 하느님 나라에서 제외되는 기막힌 미래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자녀로서의 성실하고 열심한 삶을 통하여 초대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신앙인다운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