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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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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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04 | 조회수33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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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 루카 14,15-24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어제 복음에 이어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를 받으시어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바리사이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하지요.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하라고, 그리하여 그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라고 하시는데, 오히려 자신들은 가난한 이들, 작고 약한 이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더 확실하게 ‘분리’하려고 든 겁니다. 가난한 이들은 자기들이 먼저 초대해주지 않으면 식사 자리에 끼지도 못하지만,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거룩하게 사는 자신들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의 잔치에 초대받았기에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주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그 비유에서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초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 즉 ‘하느님 나라’가 임박했음을 전했지만 그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그분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뜻을, 세상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우선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격이 그들에게서 박탈됩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볼멘 소리를 할만한 대목도 있습니다. 잔치에 초대를 하셨지만 그 잔치가 ‘언제’인지는 안알려주시지 않았냐고, 잔치가 언제인지 알았더라면 미리 다른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꼭 그 잔치에 참여했을 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응답하여 따를 수 있도록 마음과 영혼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구원의 잔치를 준비하신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시지요. 그래서 종을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보내십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산한 길, 특히 ‘골목’은 사회에서 소외된 작고 약한 이들이 사람들 등쌀에 밀려 머무르는 곳입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곳에 있는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장애인들을 찾아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자격으로 따지면 하느님 나라를 꿈도 꿀 수 없는 이들이지만, 주인이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한 덕에 기쁨의 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종을 다시 큰 길과 울타리 쪽으로 보내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머무르는 이방인들, 유다인들이 무시하며 배척하던 이들까지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신 것이지요. 이 모든 일이 하느님께 먼저 초대받았던 유다인들이 때가 되어 자신들을 부르신 하느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아서 생긴 일들입니다.
그들이 겪은 이 안타까운 상황이 아직도 나와는 상관 없는 ‘남의 일’로 여겨진다면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나라에서 벌어질 기쁨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시시각각 그 잔치에 부르시는 하느님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요? ‘언젠가는’ 하느님 나라에 가고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느님께서 ‘지금 가자’고 손을 내미시면 오늘 비유 속 초대받은 이들처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느님 나라는 죽고 난 뒤 언젠가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나의 선택과 결단으로 나를 위해 준비하신 하느님의 선하신 뜻이 실현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지금 즉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는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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